웃고 울고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삶의 비애를 끝내 따뜻한 감동으로 바꿔온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이 ‘스미레 미용실’을 한국 무대에 올린다. ‘이를테면 마치 들에 피는 꽃처럼’,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이어진 ‘재일 코리안 3부작’의 완결편이다.
정의신은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960년대 일본 규슈의 탄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며 “탄광의 비극을 포함하고 있지만 각국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문제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작품을 보면서 관객이 웃고 울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957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난 정의신은 영화 ‘달은 어느 쪽에서 뜨는가’, ‘피와 뼈’ 등의 각본으로 일본 주요 영화상을 휩쓴 작가이자 연극계에서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인정받아온 연출가다. 절망을 그리되 절망에 머물지 않고, 시대의 그늘에 가려진 이름 없는 사람들을 무대 한가운데 불러내 웃기고 울리면서 그들의 고단한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꽃피워왔다.
20여년 전부터 그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온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한·일의 체호프 같다”며 “재일 한국인의 삶을 소재로 하지만 결국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다. 처음 정의신의 작품을 봤을 때 ‘연극성 그 자체’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한·일 관계는 크게 달라졌지만 재일동포 2세들이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고 활동하고 있다”며 “지금 이 작품을 다시 보는 시대적 의미도 남다르다”고 했다.
작품의 배경은 1965년 규슈의 탄광 마을 ‘아리랑 고개’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낡은 이발소를 운영하는 재일 조선인 수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스미레 미용실’을 여는게 소박한 꿈이다. 그 곁에는 살아남기 위해 일본 국적을 택한 남편 나루히로, 탄광 사고로 다리를 다쳐 갱도로 돌아가지 못하는 시동생 히데히로, 이제 막 결혼한 여동생 부부, 조선 국적을 끝내 버리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 국적도 생각도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다투고 화해하며 가족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탄광 폭발 사고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상실과 이별이 잇따르지만 정의신은 비극 그 자체보다 그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을 바라본다.
정의신은 “1960년대에 있었던 오래된 탄광 사건으로 치부하면 거기서 끝난다”며 “하지만 보편적인 사랑과 가족의 유대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면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것들이 굉장히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의 슬픔과 괴로움이 오히려 현대적인 문제로 다시 부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미레 미용실’도 ‘야끼니꾸 드래곤’도 분명 과거의 이야기지만 그 속의 가족은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며 “인간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 관객도 지금 자신의 모습과 겹쳐 봐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수미를 연기하는 배우 최지연은 작품의 핵심을 ‘비극 속에서 계속되는 삶’에서 찾았다. 그는 “밖에서 보면 이 작품은 비극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미의 세상은 희극”이라며 “수미는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꿈과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에 기록된 영웅이나 큰 업적을 세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절망적인 순간에 꿈과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공감했다”며 “수미의 꿈은 미용실을 차리는 결과 자체보다 온갖 일을 겪으면서도 꿈을 놓지 않고 살아내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재일 코리안 3부작’은 애초부터 기획된 연작도 아니었다. 재일동포 이야기를 계속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19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흐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정의신은 그 과정에서 재일동포의 역사를 재인식했다. 규슈 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산업구조 변화로 일터를 잃은 뒤 오사카 엑스포와 공항 건설 현장 등으로 옮겨갔고 가난한 일본인 노동자와 재일 한국인들이 전후 일본의 경제 성장을 밑바닥에서 떠받쳤다는 사실이다.
정의신은 “탄광에서 공항으로 노동자들이 흘러가고 그 가난한 일본인과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 경제를 지탱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 자신에게도 새로운 발견이자 놀라움이었다”고 말했다. 정의신은 “‘스미레 미용실’을 다 쓰고 나니 내 안에 있던 재일 한국인의 역사 한 흐름을 다 써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종의 허탈감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그가 역사를 무대에 올리는 방식은 여전히 웃음이다. “작품을 쓸 때는 늘 진지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쓰다 보면 숨이 막혀요. 그러면 ‘여기서 한번 웃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을 웃기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