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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의공정과효율] 기술자료, 뺏고 뺏기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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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법 개정에 자료제출명령 대상 확대
서면 교부 확인서 등 확보해 피해 예방을

지난달 20일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법원의 자료제출명령 대상이 손해액 산정을 넘어 원사업자의 위반행위를 증명할 자료까지 넓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서 확보한 사건자료도 예외가 없는 한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은 이번 정부의 국정과제다. 기술보호 법률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고 요건도 제각각이어서, 피해 기업은 어느 부처의 어느 법에 기대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금년 1월 중소벤처기업부·공정거래위원회·지식재산처 등 6개 기관이 참여하는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이 출범했고, 3월에는 흩어져 있던 신고 창구를 하나로 모은 기술탈취 신문고가 문을 열었다. 지난달 하도급법 개정도 그 후속이다.

법무법인 율촌 고문 연세대 법무·경제대학원 겸임교수
법무법인 율촌 고문 연세대 법무·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사후 구제를 돕는 대책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기술자료를 빼앗지 않고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예방이 치유보다 백배 낫다.

실제 제재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20년 넘게 한 대기업과 거래하며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부품을 국산화한 강소기업이 있었다. 원사업자는 그 기술자료를 받아 다른 업체에 넘겨 생산을 이원화했고, 단가 인하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거래를 끊었다. 기술자료의 제공 요구 목적과 권리귀속, 대가를 적은 서면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술자료 요구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하도급법은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요구하되, 목적과 범위, 권리귀속, 대가를 미리 협의해 정한 뒤 서면으로 교부하고 비밀유지계약을 맺도록 한다. 받은 자료를 자기나 제3자를 위해 쓰는 순간 유용이 되고, 배상 한도는 손해액의 다섯 배다. 하도급 관계가 아닌 위·수탁 거래에는 상생협력법이 같은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다. 자료가 비밀로 관리돼 왔다면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도 별도로 성립한다. 세 개의 법이 겹겹이 놓여 있는 셈이다.

뺏기지 않으려면 중소기업은 줄 때 제대로 주어야 한다. 첫째, 구두 요구에는 응하지 않는다. 요구 목적과 사용 범위, 권리귀속, 대가, 반환이나 폐기 시점을 적은 서면을 받고, 비밀유지계약을 먼저 맺는다. 전화로 받은 요구는 메일로 되물어 기록으로 남긴다. 둘째, 넘기는 파일마다 회사명과 작성일, 버전, 대외비 표시를 넣고 발송 이력을 보관한다. 셋째, 개발 과정의 흔적을 쌓는다. 연구노트와 설계 변경 이력, 시험성적서가 내 기술이라는 증거다. 넷째, 사내에서 접근 권한을 나누고 비밀로 관리한다.

뺏지 않고 오해도 받지 않으려면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첫째, 요구 전에 정당한 사유를 검토하고 표준 서면 양식으로 교부한다. 실무자가 망설임 없이 쓸 수 있어야 제도가 작동한다. 둘째, 협력사 자료의 접수 창구를 일원화하고 접근 권한을 제한하고 열람 기록을 남긴다. 셋째, 구매와 개발 부서 사이에 정보 차단벽을 세운다. 넷째, 보관 기간이 끝나면 반환·폐기하고 확인서를 남긴다. 다섯째, 자체 개발 이력을 평소에 관리한다. 독자 개발 주장은 기록이 있어야 성립한다.

이런 준비는 사후에 방패가 된다. 자료제출명령 대상이 넓어진 만큼 내놓을 기록이 있냐가 승패를 가른다. 중소기업에는 위법성과 손해액을 증명할 근거가 되고, 대기업에는 억울한 오해를 벗을 근거가 된다. 결국 양쪽이 챙겨야 할 서류는 같다. 서면 교부 확인서와 비밀유지계약은 한쪽의 무기가 아니라 두 회사가 함께 딛고 서는 디딤돌이다.

 

법무법인 율촌 고문 연세대 법무·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