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마주 앉을 일이 있다면 가만히 눈을 맞춰보자. 그리고 천천히 몇 번 눈을 깜빡여 보자. 개가 따라 깜빡일 것이라고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개는 당신의 작은 움직임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이탈리아 파르마대 연구진은 개가 사람의 눈 깜빡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반려견 35마리에게 사람 얼굴 영상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개의 보호자와 낯선 남녀가 등장했다. 한 영상에서는 사람이 3초에 한 번씩 눈을 깜빡였고, 다른 영상에서는 눈을 뜬 채 가만히 바라봤다. 보호자가 눈을 깜빡이는 모습을 볼 때 개도 눈을 더 자주 깜빡였다. 낯선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할 때는 변화가 뚜렷하지 않았다. 작은 신호에도 ‘누가 보내는가’가 중요했던 셈이다.
그렇다고 개가 보호자의 눈 깜빡임을 흉내 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이 깜빡인 직후 개가 따라 깜빡이는 시간적 동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개가 “나도 좋아해”라고 답한 것도 아니다. 눈 깜빡임은 눈을 촉촉하게 하고 이물질을 없애는 생리현상이다. 연구진도 특정한 메시지를 보내는 행동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눈 깜빡임이 단순한 생리현상만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 같은 연구진은 지난해 개 54마리에게 다른 개가 눈을 깜빡이는 영상을 보여줬다. 다른 개가 깜빡이는 모습을 볼 때 실험견의 깜빡임도 늘었다. 눈 깜빡임이 개들 사이에서 긴장을 조절하거나 관계를 이어가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그 가능성을 개와 인간 사이로 넓혔다.
개의 진화는 인간의 얼굴을 읽는 역사이기도 했다. 늑대와 달리 개는 사람의 시선과 손짓에 민감하다. 사람과 개가 서로 오래 바라볼 때 양쪽에서 사회적 유대와 관련된 옥시토신이 증가한다. 개는 늑대보다 눈썹 안쪽을 들어 올리는 근육도 발달했다. 이 근육을 움직이면 눈이 커지고 어려 보인다. 우리가 ‘강아지 눈’이라고 부르는 표정이다. 인간은 그런 표정에 마음을 주었고, 인간의 반응을 잘 이끌어내는 개가 곁에서 살아남았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늑대를 길들여 개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도 인간을 읽는 법을 익혔다. 인간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듣고, 얼굴에서 감정을 찾았다. 인간 역시 개의 꼬리와 귀와 자세와 눈을 읽었다. 가축화는 한 종이 다른 종을 바꾼 역사라기보다 서로 다른 두 종이 함께 살기 위해 맞춰온 역사다.
여기서 사람 사는 세상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소통이라고 하면 먼저 말을 떠올린다. 말을 잘하고 논리가 빈틈없으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치인도 논객도 자신의 판단을 더 분명하고 단정적으로 말하려 한다. 물론 논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소통은 내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만은 아니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살피고 예상과 다른 반응이 돌아오면 내 판단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누구나 하루 종일 말할 수 있다. 휴대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만 있으면 자신의 의견을 즉시 내놓을 수 있다. 말은 넘쳐나는데 상대의 표정과 침묵, 망설임 같은 작은 신호를 읽을 기회는 오히려 줄었다. 내가 할 말을 보내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 말이 어떻게 도착했는지 살피는 데는 서툴다. 자신의 논리가 옳다는 확신만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대화라기보다 독백에 가깝다.
좋은 관계에 필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완벽하게 아는 능력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조율이다. 내가 다가갔을 때 상대가 물러서는지, 목소리를 높였을 때 얼굴이 굳는지, 말을 멈추었을 때 다시 눈을 맞추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상대의 작은 신호에 반응해 나를 조금 바꾸는 것이 관계다.
인간은 개에게 많은 말을 가르쳤다. 앉아, 기다려, 손, 안 돼. 하지만 수만 년을 함께 사는 동안 개도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쳤는지 모른다. 관계를 만드는 것은 큰 목소리와 빈틈없는 논리가 아니다. 상대가 보내는 작은 신호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이다. 우리는 말을 잘하는 능력을 소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소통은 어쩌면 상대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을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