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관계 밖에서 태어난 비혼 출생아 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친부를 상대로 친자관계를 강제하는 ‘인지에 관한 소송’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혼외 출산을 향한 사회 인식이 바뀐 데다 양측이 소송 이전에 양육비를 합의하고 마무리짓는 추세가 정착됐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2일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을 살펴보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인지에 관한 소송’(1심 기준)은 2015년 786건에 달했으나, 2024년에는 572건으로 27.2% 감소했다. 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기였던 2020년(447건)에 비해서는 다소 증가했으나,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늘어난 비혼 출생아 증가세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비혼 출생아는 증가하고 있는 반면 생부를 찾아 법적 부자·부녀관계를 맺게 하는 소송은 오히려 과거보다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 수는 약 1만4000명으로,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인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6900명 수준이던 혼외 출생아가 5년 만에 2배 이상 폭증한 셈이다. 전체 출생아(약 25만4300명) 중 혼외 출생아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5.5%로 역대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바뀐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옅어지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는 것이다. 실제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사회조사’를 보면 20대 응답자 5명 중 2명(42.8%)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2014년 조사에서 비혼 출산에 긍정적 답변을 한 비율(30.3%)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12.5%포인트나 증가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생부 없이 아이를 키우는 자발적 비혼모가 되려는 이들의 증가도 인지소송 감소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조사관은 “혼외 출생의 원인도 다양한 만큼 현행 통계를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유전자 검사의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소송 실익이 사전 합의 쪽으로 기우는 추세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유사 친자 소송인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사건의 경우 2024년 전국 법원에서 처리된 2925건 중 95.3%(2788건)에서 원고가 승소했다. 장기간 소요되는 재판 절차에 따른 피로감 역시 ‘장외 합의’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2024년 전국 가사 1심 재판의 평균 처리 기간은 약 8개월에 달했다.
한 가사 전문 변호사는 “패소가 확실한 재판을 끌어 소송 비용을 물고 가족관계등록부에 강제로 오르는 부담을 지느니, 액수를 합의해 종결하려는 경향이 매우 짙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분석은 시기상조라는 평가도 있다. 조수영 변호사(법무법인 에스)는 “출생으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 인지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어 단정하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