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들어오세요.” 지난달 28일 서울 양천구의 한 산부인과 병원. 평일임에도 진료를 보기 위해 찾은 임신부와 보호자들이 대기 공간을 가득 채웠다. 임신 초기부터 만삭의 임신부까지 20여명이 설레는 표정으로 진료를 기다렸다. 병원 원장은 “수년 사이 병원을 찾는 임신부가 더 많아진 것 같다”며 “진료와 출산, 수술 등의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출생의 늪에 빠졌던 한국에 아기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1년 이후 출생과 결혼이 9분기 연속 증가한 건 처음이다. 30대 인구 증가와 함께 결혼 및 출산에 관한 청년들의 긍정적인 인식 변화 등이 맞물린 결과다. 다만 안정적 일자리?고소득일수록 출산율이 더 높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2일 국가데이터처의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1~6월 출생아 수는 14만5804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만9430명(15.4%)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증가 규모와 증가율 모두 역대 가장 높았다. 올해 2분기 출생아는 7만791명으로 1년 전 대비 15.8% 증가했다. 2016년 1분기부터 2024년 1분기까지 7년 넘게 감소했던 출생아는 2024년 2분기부터 증가세로 전환해 9분기 연속 증가했다.
혼인도 증가하는 추세다. 올 2분기 혼인 건수는 6만2065건으로 1년 새 4.9% 증가했다. 2024년 1분기부터 2년 넘게 혼인이 늘고 있다. 출생아 수와 혼인 건수가 모두 9분기 연속 늘어난 건 처음이다.
이처럼 출산이 증가하고 있는 건 490만명가량에 이르는 ‘2차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고, 출산과 결혼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인식 변화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출생률 반등을 주도한 연령층은 30대였다.
지난 2분기 30대 후반(35~39세)의 연령별 출산율은 60.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7명 늘어났다. 30대 초반(82.1명) 출산율도 11.0명 증가하며 2019년 이후 최대치였다. 연령별 출산율이란 해당 연령대 여성 인구 1000명당 낳은 아이 수를 뜻한다.
최근 젊은 층에선 결혼 및 출산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3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조사에서 결혼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미혼 남녀는 65.7%로 2년 전보다 9.8%포인트 증가했다. 출산 의향이 있다고 답한 미혼 남녀 역시 2년 만에 29.5%에서 40.7%로 11.2%포인트 늘었다.
정부와 각 지자체가 출산 인센티브를 잇달아 발표하는 등 정책 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저고위와 국민대 연구진은 ‘최근 출산율 반등 흐름의 주요 특징과 원인 분석 연구’ 보고서를 통해 신생아 특례대출과 난임 지원 확대, 육아휴직 등 주거·임신·일가정 양립 정책이 최근 출산율 상승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24 홈페이지에서 ‘지역별 출산 지원 서비스’를 조회한 결과 이날 기준 지자체들이 지원하는 관련 사업만 676건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최근의 반등이 모든 계층에서 고르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달 ‘사회경제적 계층 간 가족형성 기회의 격차에 대한 문화적 접근’ 자료를 발표하며 출산율 반등을 주도한 집단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소득 상위 30%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저학력 청년의 출산율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며 “신생아 특례대출과 육아휴직 제도 모두 소득?자산 기준과 고용보험 가입을 전제로 해 혜택이 경제적 상층에 집중되는 한계를 지녔다”고 분석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노동시장 구조가 저출산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여성의 임금 수준이 높고 안정적인 고용을 유지할수록 출산 확률은 증가한 반면 비정규직·시간제 근무와 높은 소득 변동성은 출산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출산 이후 여성의 소득이 평균 25%가량 감소하는 ‘모성 페널티’도 나타났다. 저고위의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저출생 해결의 사회구조적 과제로 ‘좋은 일자리 창출 확대’(83.9%)를 가장 많이 꼽았다.
출산 의향에 관한 ‘지역 격차’도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인구이동 및 정주 실태 조사’를 보면, 여성의 경우 ‘결혼 의향 없음’이라는 응답률은 수도권에서 41.6%였으나 읍면부에서는 57.7%로 높았다. 조성호 보사연 연구위원은 “도지역 읍면부의 교제율이 낮았지만, 교제 의향에서는 지역 차이가 없었다”며 “교제는 의지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라고 했다.
출산 연령이 높아지며 ‘고위험 산모’의 분만도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지만 정책적인 뒷받침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학적으로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는 35세 이상 출산이 늘며 지난해 37주 미만에 태어난 조산아 비중은 10.8%로 10년 전(6.9%)보다 4%포인트가량 커졌다. 고령 출산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분만과 신생아 치료 인프라도 점검할 때라는 분석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산율이 회복하는 건 에코붐 세대의 유입이라는 인구학적 요인이 크고, 출산 관련 정책들이 마중물이 된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계층에 쏠리는 ‘K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불안정한 노동 계층과 저소득층의 결혼과 출산을 위해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가 앞으로 사회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석 교수는 “고위험 산모와 아이들을 위한 보건 관련 정책과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며 “여러 검사를 해야 하는 산모들을 위해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