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과 해군의 무기체계 획득 및 함정 건조를 총괄하는 핵심 수뇌부가 잇달아 한국 방산·조선 생산 현장을 방문했다. 자국 내 제조 기반 약화로 전력 현대화에 고심 중인 미국이 기술력을 갖춘 한국 방위산업을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지상 무기체계 공급부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및 신규 건조에 이르기까지 양국 방산 협력의 외연이 확장되는 모습이다.
2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따르면, 브렌트 잉그러햄 미국 육군 획득·군수·기술 차관보 일행은 지난달 26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을 방문해 차륜형 K9 자주포 등 지상 장비 전반의 생산 역량을 확인했다.
잉그러햄 차관보는 550여개 획득 프로그램과 약 1700억달러 규모의 포트폴리오를 총괄하는 미 육군 획득 최고책임자다. 미 국방부 획득운영유지 담당 부차관 직무대행과 플랫폼·무기 포트폴리오 관리 담당 부차관보 등을 거치며 항공·해상·사이버·전자전 체계 등 주요 무기체계 획득 업무를 담당했다.
이번 방한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법인 한화디펜스USA(HDUSA)가 최근 미 육군 차륜형 자주포(MTC) 프로그램의 시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한 직후 이뤄졌다. 잉그러햄 차관보 일행은 차륜형 K9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로봇 용접 등 대량 생산과 품질 관리를 뒷받침하는 자동화 공정을 살펴봤다. 또 차륜형·궤도형 K9 자주포 기동 시연을 참관하고 다연장 유도미사일 천무, 중거리지대공유도무기(M-SAM),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L-SAM), 레드백(보병전투장갑차), 한국형수직발사체계(KVLS)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점검했다.
방문단은 생산라인의 자동화 수준과 실장비 기동 시연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한화의 생산능력과 관리 체계 등에 큰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클 쿨터 HDUSA 최고경영자(CEO)는 “한화는 검증된 제조 역량과 글로벌 생산 경험으로 한·미동맹 억지력을 강화하고 미국 방위산업 기반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 전력 분야에서도 미 해군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미 해군성 함정 건조 정책을 담당하는 리처드 브레킨리지 조선 담당 수석보좌관 일행은 지난달 말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SK오션플랜트 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미 해군 중장 출신인 그는 함정 건조와 획득 절차 간소화, 미국 조선 산업기반 재건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미 해군 측은 방위사업청 주관으로 이뤄진 이번 일정에서 함정 건조에 필요한 생산능력과 기술력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서명한 ‘미 해군 및 조선산업 기반 재건’을 위한 국가안보 대통령각서와 궤를 같이한다. 미국 함정 건조 역량 확충을 위해 동맹국 조선업체의 생산능력을 활용한다는 내용으로, 대잠·수상전 임무를 수행하는 수상전투함과 해상 보급용 유조선, 차량 등을 운송하는 로로선 등이 대상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에 전투함 정보요청서(RFI)를 보냈고,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3사에 중형급 급유함 RFI를 발송해 조달 계획 검토에 착수했다. 각사는 건조 실적과 설계 인력·역량, 연간 건조 가능 규모 등을 담아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조선사들도 현지 거점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한화는 필리조선소 인수에 이어 오스탈USA 인수를 추진 중이며, HD현대중공업은 ‘HD현대USA’를 세워 조선소 인수를 저울질하고 있다. SK오션플랜트는 미 해군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해 MRO 사업 기반을 다졌다.
과제도 적지 않다. 실제 함정 발주를 위해선 미 의회의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며 현지 업계의 반발도 변수다. 국내에선 한·미 조선협력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지원 법안이 발의됐으나 양국 간 구체적인 협력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