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물어요. 어떻게 여자가 버스기사를 하기로 결심했냐고요. 대단하고 멋지다고도 합니다. 감사한 말들이죠. 하지만 솔직히 칭찬받을 일은 아닙니다. 사회적 기업가로 붙잡고 있던 세계가 무너진 뒤 정신을 차리고 전혀 다른 자리에서 새 출발 한 것뿐입니다. 지금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아직 쓸 만한 팔다리가 있어 감사하고, 새롭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있어 감사합니다.”
경기도 안양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는 강희정(42)씨는 자신의 인생을 이같이 담담하게 말했다. 한때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좇았던 그는 사업 실패 이후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1년여 동안 버스를 운전하면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그가 최근 펴낸 에세이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브로북스)는 그 시간의 기록이다. 여성 버스기사로 살며 겪은 희로애락과 사업 실패 뒤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운 과정을 솔직하게 담았다.
지난달 28일 오후 운행을 앞두고 만난 강씨는 “1년여 동안 버스기사로 살면서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고, 매일 다른 삶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자신의 소명처럼 여겼다. 2014년에는 ‘굿워크’라는 이름으로 우간다 어린이들에게 새 옷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사회적기업 ‘굿워크플래닛’을 설립해 기부카페를 운영했다. 손님이 음료를 마시면 기부 코인을 받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사연을 읽은 뒤 자신이 돕고 싶은 사람에게 코인을 넣는 방식이었다.
취지는 분명했고 아이디어도 선했다. 하지만 선한 의지만으로 현실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사업은 실패했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다. 세상을 바꾸려던 꿈을 결국 멈췄다. 그때 새로운 길을 제시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통학버스를 운전했던 아버지는 낙담해 있던 딸에게 “버스기사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처음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60대 아저씨들의 세계에 왜 내가 들어가야 하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당장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버스 운전을 배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버스 안 풍경도 이제는 그의 일상이 됐다. 학교에 가는 학생, 장을 보러 나온 어르신, 하루의 피로를 안고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까지. 그의 버스를 타고 오가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어느새 정겹고 익숙한 이웃이 됐다. 그들에게 건네는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가 책 제목이 된 이유다.
“버스기사에게는 아주 평범한 말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인사죠. 그런데 그 말을 계속하다 보니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안녕하세요’는 어느 순간 승객에게만 건네는 인사가 아니었다. 사업 실패 이후 자신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움츠러들었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성 버스기사라는 이유로 받는 시선은 다양하다. “대단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고생이 많다”는 동정 어린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강씨는 자신의 선택을 특별한 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인생은 항상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잖아요. 그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열심히 움직이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길을 찾는 중이에요.”
강씨는 당분간 버스 운전대를 계속 잡을 생각이다. 미래를 미리 단정하지는 않는다. 그냥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틈틈이 버스기사 생활을 다룬 유튜브 채널 ‘강땡스’에도 영상을 올린다. 그가 선택한 직업에 대한 긍지를 보여주고, 직업에 귀천이 없으며 성별이나 나이가 직업 선택의 벽이 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어서다. 그의 영상을 보고 버스기사에 관심을 갖게 된 젊은 여성이나 20~30대 청년들이 실제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