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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산불로 집 잃고 아버지마저 떠나보낸 ‘열다섯 국가대표’…이번엔 금메달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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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파크’서 시작한 스케이트보드 국가대표 문강호
스스로 준비하는 두 번째 아시안게임…“이번엔 금메달”

불이 나던 날, 소년은 집에 없었다. 훈련을 나가 있었다. 돌아왔을 때 남은 것은 없었다. 집도, 옷도, 스케이트보드도.

 

2023년 봄, 강원도 강릉에 대형 산불이 났다. 산에서 번진 불길은 마을을 집어삼켰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게 타 버리고 없었어요. 자기 스케이트보드도 없었고요. 울기도 했죠.” 

 

어머니는 그날을 그렇게 떠올렸다.

전소된 집 앞에 선 소년과 여동생들. 문강호 가족 제공

 

당시 열두 살. 생애 첫 아시안게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과 보드를 잃었지만 훈련은 멈추지 않았다. 몇 달 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스케이트보드 파크 종목 결선에 진출해 8위에 올랐다.

 

[항저우=뉴시스] 고승민 기자 = 23일(현지시간)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스케이트보드 문강호가 목말을 타고 있다.사진 = 뉴시스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스케이트보드 문강호가 목말을 타고 있다.사진 = 뉴시스

소년의 이름은 문강호. 당시 한국 선수단 최연소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스케이트보드 국가대표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소년은 이제 열다섯 살이 됐다. 첫 대회에서는 경험만으로 벅찼지만, 두 번째 아시안게임에서는 메달을 바라본다.

아버지, 두 여동생과 함께한 문강호. 문강호 가족 제공
아버지, 두 여동생과 함께한 문강호. 문강호 가족 제공

아버지의 부재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앞둔 문강호에게 지난 3년간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곁에 없다.

 

첫 아시안게임까지 아버지는 늘 함께였다. 어머니의 표현으로는 아들의 ‘매니저’였다.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권한 사람도 아버지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국내에선 비인기 종목이지만, 아버지는 “외국에선 보드 한 장만 들고 나가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며 아들 손에 보드를 쥐여줬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 하지만 보드를 탄 지 1년 반 만에 경험 삼아 나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5위권에 오르자 부모의 생각도 달라졌다. 

 

“어머, 웬일이야. 우리 아들도 가능성이 있구나.”

 

어머니는 당시를 떠올렸다.

 

문제는 연습할 곳이었다. 당시 가족이 살던 강릉 산속에는 제대로 된 시설도, 배울 곳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보자”며 집 옆에 작은 파크를 직접 지었다.

파크를 직접 만드는 아버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린 아들. 문강호 가족 제공
파크를 직접 만드는 아버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린 아들. 문강호 가족 제공

 

아버지가 지어준 ‘산골 파크’에서 보드를 타는 어린 문강호. 문강호 가족 제공
아버지가 지어준 ‘산골 파크’에서 보드를 타는 어린 문강호. 문강호 가족 제공

가족이 ‘산골 파크’라 부르던 곳이다. 문강호는 그곳에서 매일 보드를 탔다. 아버지는 기술을 함께 연구하고 장비를 챙기며 대회마다 따라다녔다. 산속의 작은 파크에서 시작한 부자의 시간은 문강호를 국가대표까지 데려갔다.

 

태극마크를 단 뒤 더 나은 훈련 환경을 찾아 강릉 경포 인근으로 이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산불로 터전을 잃었다.

 

가족은 정부가 마련해 준 임대주택에서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보드와 장비도 다시 마련했다.

 

몇 달 뒤 문강호는 항저우로 향했다. 열두 살의 첫 아시안게임이었다. 그때까지는 아버지가 곁에 있었다.

 

항저우에서 돌아온 뒤 아버지의 건강이 기울었다. 그동안 아버지가 도맡던 훈련과 대회 준비는 하나씩 아들의 몫이 됐다.

 

“그전에는 아빠가 모든 대회를 같이 다녔어요. 기술도 같이 연구하고 보드도 늘 아빠가 챙겼죠. 그런데 편찮으신 뒤부터는 강호가 혼자 많이 했어요.”

 

지난해 문강호는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아들이 두 번째 태극마크를 달고 설 아시안게임 무대를 아버지는 보지 못한다.

 

그렇게 소년은 조금 일찍 어른이 됐다.

문강호가 최근 훈련에서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문강호 가족 제공
문강호가 최근 훈련에서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문강호 가족 제공

 

 

스스로 준비하는 두 번째 무대…이번엔 금메달

 

두 번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이 더 많아졌다. 새 기술도 가다듬고 있다. ‘바디베리얼 540’이다. 몸은 공중에서 한 바퀴 반(540도)을 도는 동안 보드는 한 바퀴(360도)만 돌려 착지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대회를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다. 항저우에선 경험이 먼저였지만, 이번엔 메달을 바라본다.

 

목표를 묻자 문강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준비한 걸 다 해보는 거요. 그리고 이왕 하는 거,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문강호는 오는 20일 일본으로 출국한다. 이번 여정에는 어머니가 함께하지 못한다. 집에 남은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해서다. 첫 아시안게임까지 아버지가 곁을 지켰고, 그 뒤로는 어머니가 훈련장을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멀리서 아들의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

 

어머니는 경기 중계 여부부터 걱정했다.

 

“중계를 해줄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간 부모님들에게 소식을 들어야 할 것 같아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문강호. 문강호 가족 제공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문강호. 문강호 가족 제공

열두 살에 집과 보드를 잃었다. 그다음엔 곁을 지키던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래도 보드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열다섯 살의 문강호는 자신의 노력보다 가족을 먼저 말했다.

 

“부모님이 옆에서 계속 챙겨주셔서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열심히 했지만요.”

 

3년 전 첫 아시안게임에서는 경험을 이야기했던 소년이 이번에는 금메달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