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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카드로, 협상 지렛대로… 난민의 정치·외교 무기화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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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타 난민 사태의 이면

모로코 배후설에 무게 실려
‘알제리와 밀착’ 스페인 겨냥
집단 월경 의도적 유도 분석
튀르키예는 EU 상대로 활용

이주 압박 받은 국가 중 절반
정치·군사·경제적 요구 수용
안보 위협 등 악용 우려 커져

지난 7월 말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수만명의 이주민들이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 스페인 자치도시 세우타에 몰려든 사건은 발생 한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모로코에서 난민이 세우타로 진입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다수 연구는 여러 차례 벌어진 ‘세우타 난민’ 사태가 난민을 무기로 하는 정치·외교적 수단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상대 국가를 외교적으로 압박하거나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많은 이민자들을 국경으로 유도하는 것이 외교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난민의 무기화’ 전략은 목표 달성 확률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에서 악용될 여지가 크다.

 

지난 7월30일(현지시간) 수만명의 이민자들이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에 철책을 넘거나 바다를 헤엄쳐 무단 진입하고 있다. 세우타=AP연합뉴스
지난 7월30일(현지시간) 수만명의 이민자들이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에 철책을 넘거나 바다를 헤엄쳐 무단 진입하고 있다. 세우타=AP연합뉴스

◆모로코 ‘세우타 난민사태’ 배후설

2일 로이터통신·A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7월30일부터 이틀간 모로코에 거주하던 주민 8만여명이 스페인령 세우타에 철책을 넘거나 바다를 헤엄쳐 무단 진입했다. 이들 대부분은 모로코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7000~1만명의 이주민들은 세우타에 남아 거리나 해변에서 머물고 있다.

 

세우타에서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불법 이민자 추방을 촉구하는 세우타 주민들의 시위가 격화하면서 이민자들이 머물고 있는 해변 야영지에 불을 지르거나,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해변으로 진입하는 적십자사 차량을 막아서는 등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세우타 난민 사태의 배경으로는 ‘모로코 배후설’이 제기되고 있다. 스페인이 모로코와 영토갈등을 벌이는 알제리와 밀착하자, 모로코가 일부러 국경 통제를 완화해 사태를 유발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모로코의 수많은 주민들이 비슷한 시간대에 차량 등을 타고 세우타 국경지대에 도착했으며, 평소 무단 월경 시도에 엄격히 대응하던 모로코 국경수비대가 방임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에서 열린 불법 이주민 반대 집회에서 세우타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우타=EPA연합뉴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에서 열린 불법 이주민 반대 집회에서 세우타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우타=EPA연합뉴스

게다가 이번에 세우타로 진입한 이민자 대다수가 모로코 현지인이 아닌 내전 중인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출신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콩고민주공화국, 말리, 수단 등 사하라사막 이남의 국가에서 발생한 난민들은 유럽과 가장 인접한 아프리카 국가인 모로코를 경유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모로코 정부가 이 같은 난민의 심리를 역이용했다는 분석이다.

◆난민은 어떻게 ‘무기’가 되나

다수 이민자들이 모로코를 경유해 무단으로 세우타에 진입한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2021년 5월에도 모로코 정부가 국경을 열어 약 8000명의 이민자들이 세우타에 쏟아져 들어오기도 했다. 벨기에 겐트 대학교 연구팀은 2021년 세우타 난민 사태를 난민을 무기로 이용하는 사례로 분류하며, 이 사태의 발단으로 스페인과 모로코의 서사하라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꼽았다. 스페인 정부가 모로코와 영토 분쟁 중인 서사하라의 독립 지도자 브라힘 갈리의 스페인 내 병원 치료를 허용한 데 따른 모로코 정부의 보복 조치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강제적인 계획 이주(CEM)’ 중 하나의 사례라며, 국경을 넘는 이주를 의도적으로 조성해 상대국으로부터 정치·군사·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영국 에식스대 토비아스 뵈멜트 정치학과 연구팀도 ‘강제적으로 계획된 이주와 환경 스트레스’라는 논문을 통해 난민을 무기로 하는 전략이 국력의 차이를 뒤집을 수 있는 ‘비대칭 무기’ 효과를 준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1951년부터 2006년까지 발생한 72건의 ‘난민의 무기화’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이주민의 압박을 받은 51개 국가 중 26개국이 상대국가의 정치·군사·경제적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했다고 밝혔다.

2021년 세우타 난민사태 역시 다음해 스페인은 서사하라 문제에 대해 기존의 입장을 선회하고 모로코가 제시한 서사하라 자치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뵈멜트 연구팀은 “2021년 세우타 사태는 이민을 비군사적 지렛대로 사용한 계산된 강압 외교에 가깝다는 결론”이라고 평했다.

◆난민을 지렛대로… 흔들리는 유럽

‘난민의 무기화’ 사례는 튀르키예에서도 볼 수 있다. 튀르키예는 2015~2016년 유럽의 난민 위기 당시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수백만명의 이민자를 수용하고 이들의 유럽행을 통제하는 대가로 유럽연합(EU)으로부터 총 60억유로(약 9조5600억원) 상당의 지원을 받아냈다.

 

또한 튀르키예는 시리아 난민을 지렛대로 활용해 EU 가입협상과 비자 자유화, 관세동맹 개선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상대국가의 안보를 위협하고 내부분열을 야기하는 목적으로 난민을 악용하기도 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러시아는 매년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잇는 ‘수바우키 회랑’에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명의 난민들을 풀고 있다. 이들을 러시아와 벨라루스 접경 국가인 폴란드와 발트 3국으로 유입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비교적 국경 간 검문이 허술한 EU 국경 시스템을 노린 것으로, 공격을 받은 핀란드와 폴란드 및 발트 3국은 러시아·벨라루스와의 육상 국경을 폐쇄하고, 병력을 충원해 국경 경비를 강화한 상태다.

뵈멜트 교수는 “난민을 이용한 압박은 상대국가가 경제 침체나 기후위기 등 좋지 않은 상황일 때 훨씬 성공하기 쉬운 결과를 확인했다”며 “난민이 유입되는 국가에서 나쁜 상황이 한 건도 없을 때 압박 성공률은 약 4.5%에 불과하지만, 좋지 않은 상황이 40건일 경우 성공률은 21%까지 상승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