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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정치 여정에 첫 자서전…정장선의 ‘평택 현대사 기록’ [오상도의 경기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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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글로벌 반도체·수소 도시’로…31년 정객이 쓴 평택 30년 역동사
정치 인생 첫 저서 ‘대한민국은 왜 평택에 주목하는가’ 발간…“지속가능 도시”
5일 평택국제대서 출판기념 북콘서트…김부겸·박영선·민병두 등 무대에 올라
1995년 3개 시·군 통합부터 미군기지 이전·삼성 유치까지…고민과 선택 집필

#.1 “아침에 대략 늘 하는 일들을 정리하고, 커피를 한잔 하고 있다. 비가 오고 있고. 어제 교회를 다녀왔으니 오늘이 월요일이네. ‘내가 월요일 아침 이러고 있어도 되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랜 습성은 그만큼 질긴가 보다. 내 살아온 일들을 돌아보며 바뀌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아내 외출 운전도 해 주고, 삼식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다행히 하루 한 끼 식사 약속이 생겨 다행이다.”

 

#2. “시장에 두 번째 당선되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수많은 고발과 고소였다. 선거법 위반, 제3자 뇌물죄 의혹 등등. 고소·고발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선거 때 상대 후보 측이었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수가 20건이 넘었다…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이었고, 공직자들까지 여러 차례 불려가 고생했다. 이제 모든 것이 종결됐다. 마지막까지 괴롭혔던 제3자 뇌물죄 의혹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정장선 전 평택시장이 재임 중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평택시 제공
정장선 전 평택시장이 재임 중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평택시 제공

지난 5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장선 전 경기 평택시장은 퇴임 후 계획을 늘어놨다. 첫손에 꼽은 건 고대 문명 답사였다. 이집트와 인도, 중국, 중동 지역을 돌며 세계 4대 문명의 현장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단순한 답사가 아니라 친분 있는 교수님들과 함께 깊이 있게 공부하며, 인류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가슴 속으로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30년 넘게 정치권의 세파(世波)에 시달리던 그에게는 달콤한 휴식처럼 다가왔을 법하다.

 

이집트로 출국했던 정 전 시장이 인도와 중국 등을 모두 돌았는지는 알 수 없다. 간간이 접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사진들 속에선 매일 아침 뒷산을 오르고 주말이면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는 어느 60대 범부(凡夫)의 삶만 고스란히 녹아있다. 평택의 단출한 주택에서 인생 2막을 연 정 전 시장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정장선 전 평택시장(오른쪽)이 지난해 8월 한국-베트남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평택-다낭 우호교류 합의서’ 교환식에서 응우옌 반 꽝 다낭시 당서기(왼쪽)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은 이재명 대통령. 평택시 제공
정장선 전 평택시장(오른쪽)이 지난해 8월 한국-베트남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평택-다낭 우호교류 합의서’ 교환식에서 응우옌 반 꽝 다낭시 당서기(왼쪽)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은 이재명 대통령. 평택시 제공

◆8년 시정 끝으로 정계 은퇴…최원용 시장에 ‘아름다운’ 바통 터치

 

지난 6월 야인(野人)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정 전 시장이 31년의 정치 여정을 마감하며 평택 현대사의 기록인 ‘대한민국은 왜 평택에 주목하는가’를 자서전 형태로 출간했다. 그는 “부끄럽지만 그 오랜 정치 인생 동안 처음 내는 자서전”이라고 소개했다.

 

1995년 도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3선 국회의원과 재선 평택시장을 거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책을 내지 않았던 그였다. 처음으로 펜을 들어 집필한 책에는 수도권 변방의 소도시에 불과했던 평택시가 인구 60만을 넘어 80만 거대 도시를 바라보는 ‘글로벌 반도체·안보 허브’로 거듭나기까지, 격동의 현장이 담겼다.

 

정장선 전 평택시장이 퇴임 직후 강원도로 여행을 가 치킨을 맛보고 있다. SNS 캡처
정장선 전 평택시장이 퇴임 직후 강원도로 여행을 가 치킨을 맛보고 있다. SNS 캡처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심심찮게 출판기념회를 열어 선거자금을 마련하는 정치판의 현실을 고려할 때 질긴 유혹을 잘 견뎌온 셈이다.

 

저서는 정치인의 정례적인 홍보물이나 치적 자랑과는 궤를 달리한다. 정 전 시장은 정치적 주장이나 중앙정치 대립, 개인의 치적에 대한 기술을 최소했다고 밝혔다. 대신 평택이 거쳐온 급격한 변화의 과정과 고비마다 현장에서 내린 정책적 선택, 행정적 고민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두 달 넘게 원고를 손수 집필했다.

 

정 전 시장은 “1995년 정치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할 줄도 몰랐고, 31년의 세월은 평택이라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온 시간이었다”며 “오늘의 평택이 만들어지기까지 유권자와 공직자들이 함께했던 선택과 노력의 기록을 후대에 남기는 것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뒷산에 올라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정장선 전 평택시장. SNS 캡처
뒷산에 올라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정장선 전 평택시장. SNS 캡처

◆‘미군기지 특별법’에서 ‘삼성 캠퍼스’까지…도시 체질 바꾼 협치

 

저서에는 1995년 평택시·송탄시·평택군 3개 시·군 통합이라는 초유의 행정구역 개편을 시작으로 현재 평택의 산업·도시 인프라 기틀이 마련된 결정적 순간들이 구체적으로 수록됐다.

 

핵심 이정표는 국회의원 시절 정 전 시장이 대표 발의해 2004년 제정된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평택지원특별법)’이다. 이 법 제정을 통해 평택은 전국 단위의 기업 유치가 가능해졌다. 1421만여 ㎡(약 430만평)에 달하는 산업단지 물량을 확보하며 발판을 마련했다.

 

이 같은 법적·제도적 토대는 훗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유치와 고덕국제신도시 조성, 브레인시티 일반산업단지 개발로 이어졌다. 재선 시장으로서 행정 실행력을 결합했다. 군사도시에서 반도체·수소 산업 도시로 체질이 바뀐 순간이다.

 

평택항 개발과 도계 경계 분쟁 타결 과정, 평택지제역 건설 및 철도·도로망 확충, 카이스트(KAIST) 평택캠퍼스와 국제학교 유치, 수소 생태계 구축, 주한미군과의 국제교류 등 도시 발전사 전반도 생생하게 기술됐다. 1000만원으로 시작했던 첫 총선 출마 비화, 청년 공직자들과의 교감, 반려견 ‘클라라’ 이야기 등 인간 정장선으로서 걸어온 삶의 궤적도 녹아있다.

 

정장선 전 평택시장의 첫 출판 기념회 포스터.
정장선 전 평택시장의 첫 출판 기념회 포스터.

◆“무거운 갑옷 벗었다”…지난해 9월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

 

정 전 시장은 지난해 9월 일찌감치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6월23일 퇴임식을 끝으로 8년 시정을 차분히 마무리했다.

 

당시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퇴임식에는 민선 9기 최원용 평택시장(전 부시장)이 함께해 전·현직 시장이 연속성과 화합을 다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정 전 시장은 퇴임사에서 “30년 정치를 마무리하면서 무거운 갑옷을 이제야 벗어 던진 것 같다”며 “지역 경제 영토를 넓히며 지역내총생산(GRDP) 도내 3위를 달성하는 등 성장을 이뤄낸 것은 공직자들의 헌신 덕분”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시정을 이어받은 최 시장은 “정치적 이정표가 되어주신 분”이라며 “정 전 시장이 다져놓은 반도체·미래차·수소 등 핵심 역점 사업들을 차질 없이 계승해 시민이 행복한 ‘새로운 평택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화답했다.

 

2024년 11월 투자유치 설명회장에서 발언하는 정장선 전 평택시장. 평택시 제공
2024년 11월 투자유치 설명회장에서 발언하는 정장선 전 평택시장. 평택시 제공

◆5일 평택국제대서 북콘서트…정치 거물들 모여 정치 대담

 

31년 정치 여정을 갈무리하는 출판기념 북콘서트는 이달 5일 오후 평택국제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행사는 정치권의 세 과시용 출판기념회 형식을 탈피해 지역 주민과 문화적으로 소통하는 걸 목표로 잡았다. 음악회(1부)와 북토크(2부)로 다채롭게 꾸려진다. 음악회에선 아코디언 연주, 소프라노·바리톤 성악 공연, 남성중창이 펼쳐진다. 정 전 시장이 무대에 올라 시민들에게 감사의 노래도 선물한다.

 

북토크에선 민병두 전 국회의원이 사회를 맡는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패널로 참여한다. 중앙정치와 지방행정을 두루 거친 정치권의 거목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 전 시장의 저서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와 평택의 30년 변화상, 대한민국 지방자치 및 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대담을 나눌 예정이다.

 

정 전 시장은 “평택 발전에 힘을 보태준 모든 도민과 힘겹게 만들어낸 평택지원특별법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평택이 세계 속의 명품 도시로 도약하는 길을 한마음으로 응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