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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아르헨 고원서 마주한 ‘자원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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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지난달 19일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 해발 4000m, ‘옴브레 무에르토’(Hombre Muerto) 염호에 있는 ‘포스코 에어포트(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머리가 띵했다. 평지의 60∼70%에 불과한 산소량, ‘전날부터 과식·과음하지 말라’, ‘가서 절대 뛰지 말라’는 당부가 훅 와닿았다. 실제 의료진이 측정한 산소포화도 수치(정상범위 95% 이상)도 80%대에 그쳤다. 동행자 일부는 산소호흡기 착용을 권유받기도 했다.

안데스의 대자연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잠시 멍해질라치면 영하 10도의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강렬한 햇빛이 따갑게 내리꽂혔다. 이날도 오전 6시30분부터 2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경비행기가 떴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면 차로 8∼10시간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고, 1주일 전엔 시속 153㎞의 강풍이 불어 모든 작업이 중지됐다고 한다. 현장에는 의료진이 상주하고 고압산소실과 구급차 등 시설을 갖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유지혜 산업부 기자
유지혜 산업부 기자

대체 포스코는 왜 이 오지까지 들어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답은 땅속 깊은 곳에 숨겨진 ‘하얀 석유’, 리튬에 있다. 통상 다른 기업들이 100m 깊이만 파 내려갈 때, 포스코는 400~500m 깊이까지 뚫고 들어가 리튬을 품은 염수를 끌어올리는 뚝심을 발휘했다. 그 결과 초기 220만t으로 추산되던 매장량 추정치는 1350만t으로 불어났다. 여기에 추가 인수분까지 합치면 포스코가 확보한 염호 총면적은 서울 면적의 절반(287㎢)에 달하고, 전체 매장량은 1500만t 수준에 이른다. 수율을 고려해도 전기차 7000만대를 만들 수 있는 300만t의 리튬을 뽑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광권 인수 후 8년의 집념 끝에 올 2분기 110억원이라는 첫 흑자를 냈지만 현장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이상 기후로 눈이라도 내리면 염수 농도가 떨어질까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다. 현지에 체류하는 주재원에게 ‘34㎞ 거리에서 차로 물을 실어 나르던 몇 년 전보다 환경이 훨씬 나아지지 않았냐’는 나름의 위로를 건네자 “새로운 개선 포인트를 찾아서 앞으로 나가야 하니까 항상 현재가 제일 힘들다”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 역시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포스코 광권 바로 옆에는 중국, 호주 등 글로벌 자원 공룡 기업들이 빼곡하게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눈앞의 염수와 땅을 두고 세계적 기업들이 바짝 붙어 치열한 지분 싸움을 벌이는,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장’이다. 특히 거대 자본과 외교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은 우리 기업에 위압적인 상대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자원 현장에서는 총칼만 안 들었을 뿐 이미 국가 주도의 자원 영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국들은 정부가 든든한 ‘뒷배’다. 실제로 세계 리튬 정제 시장을 장악한 중국은 국유기업과 국책은행이 한 몸으로 움직이고, 일본은 국영 기관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탐사비 절반을 대고 채무보증을 서며 민간의 어깨를 가볍게 해준다. 반면 우리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실패 이후 정부 차원의 지원 기능이 크게 위축됐다.

자원 개발은 십수년의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 장기전이다. 공급망이 재편되는 지금이 핵심 자원 확보의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험지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장 근로자들의 헌신에만 기대서는 글로벌 자원 전쟁의 파고를 넘기 힘들다. 영일만의 ‘제철보국’이 그랬듯, 안데스 고원의 ‘자원보국’이 결실을 보려면 정부가 실효성 있는 정책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