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외국산 반도체에 대한 표적 관세를 예고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긴장 속에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러트닉 장관이 관세 부과보다 현지 생산을 강조하는 속내를 드러내자 셈법이 더욱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미국 정부가 원하는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천문학적 투자금이 필요해 바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의 발언에 비췄을 때 미국 정부는 자국 내 생산을 확대하는 기업에 관세 부담을 덜어주고, 그러지 않는 기업에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등의 대미 투자를 더욱 끌어내겠다는 속셈을 노골화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적 전략 자산이기도 한 메모리 반도체의 특수성과 외국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자국 내 고용 창출을 늘리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향을 감안하면 러트닉 장관이 사실상 ‘반도체 현지 생산’을 압박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경쟁 국가가 많은 다른 품목과 사정이 다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과점 독주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데다, 최근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공급난으로 고객사들이 입도선매에 나설 정도로 물량이 달리는 상황이다. 이런 국면에서 관세를 올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최대 수입처인 미국 기업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관세를 올리면 미국 기업들 상당수가 피해를 입는 것을 뻔히 아는 미국 정부가 관세 카드를 흔드는 건 숨겨진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관세를 올리면 미국 기업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쉽게 올리기 힘들 것”이라며 “관세 부과를 빌미로 현지 생산을 유도하려는 것 같아 예의 주시 중이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미국 내 생산과 어떻게 연결 짓는지 집중해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대미 투자 현황을 점검하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며, 올해 말 두 번째 파운드리 공장(테일러 팹2) 착공을 계획하는 등 미국 내 생산 기반을 넓히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4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짓고 있으며, 미국 내 추가 투자 가능성도 열어둔 상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 내 수요 기업들의 단가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현지 기업들도 이를 원치 않는 분위기”라며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