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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재배치 없인 대규모 투자 불가”… 호남반도체 지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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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불확실성’ 커지는 기업들

구조조정 아닌 신규 공장 증설
원인·성격 따라 구분 필요 지적
법 개정 지연 땐 투자 차질 전망

전문가 “로봇 도입 파업 장기화
회사는 관련 사업 포기 할 것”
지침 유지 땐 기업 악영향 분석

정부가 그동안 기업의 고유한 경영 판단 영역으로 여겨져온 인력 배치전환을 원칙적으로 노동조합과의 의무 교섭 대상으로 보면서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고도의 경영 판단에 속하는 인력 배치가 노사 교섭과 쟁의의 대상이 되면서,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 등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신속한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3일 발표한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 지침안’에 따르면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로 인한 배치전환’ 등은 의무 교섭 대상에 해당한다. 정부는 공장 신설과 같은 사업 경영상 결정 자체는 의무 교섭 대상이 아니라면서도, 이로 인해 근로조건이 변동되는 인력 배치전환은 의무 교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가 3일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을 발표하고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등 공장 신설·이전 등 사업 경영상 결정만으론 쟁의대상이 될 수 없고,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도 의무적 교섭·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사진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7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한국광기술원에서 열린 전남광주 반도체 인력양성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전남광주=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3일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을 발표하고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등 공장 신설·이전 등 사업 경영상 결정만으론 쟁의대상이 될 수 없고,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도 의무적 교섭·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사진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7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한국광기술원에서 열린 전남광주 반도체 인력양성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전남광주=연합뉴스

공장 신설·이전과 관련해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구체적인 인력운영계획이 수립 중인 사실이 확인되거나 확정된 계획이 공지되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교섭이 결렬되면 파업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은 파업 등을 할 수 있는 쟁의 대상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을 추가했다. 이를 근거로 인력 재배치 등이 예상되는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이미 호남 공장 신설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광주·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앞두고 신규 투자에 따른 인력 배치전환이 단체교섭과 노동쟁의의 대상이 되면 사업 추진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도체 산업과 같은 대규모 투자는 인력 재배치 계획의 구체화 없이는 실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약 인력 배치전환이 노사 분쟁의 도구로 전락할 경우, 기존 수도권 반도체 사업장 인력을 호남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발생해 투자 및 반도체 생산 일정이 표류할 수도 있다.

 

결국 지침대로면 기업들이 노조 요구를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대차가 아틀라스를 도입해 노조에서는 정리해고 반대 요구를 하고, 파업이 장기로 이어지면 회사는 버티지 못하고 로봇 도입을 지연하든지 포기할 것”이라며 “결국 경영상 의사결정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는 그런 것까지도 다 교섭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배치전환의 원인과 성격에 따라 노동쟁의 대상 여부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력 감축을 수반하는 구조조정 과정의 배치전환은 근로조건과의 연관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지만, 신사업 진출이나 신규 공장 증설에 따른 배치전환은 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인력관리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관련 법 개정과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의 투자 실행 시점이 엇갈릴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쟁의 대상에 관한 법적 기준을 정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이 프로젝트가 투자 실행 단계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부 노조는 관련 사안을 교섭 의제로 삼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재계는 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섭이 본격화하면 기업들이 인력 재배치와 투자 집행에 신중해질 수 있다고 본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선 기술과 자본, 발 빠른 인력 활용이 전제돼야 한다”며 “미국과 일본이 파격적 지원으로 반도체 팹(공장) 완공 시점을 앞당기는 상황에서, 법적 불확실성 탓에 우리 기업의 투자와 국가 전략 프로젝트의 시계가 늦춰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