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시그니엘’에서 인제 취사장으로… 박일병, ‘취사병 전설’을 꿈꾸다 [유희태 기자의 ‘있었다’]

부대의 아침, 총 대신 삽과 주걱을 든 취사병이 있었다

새벽 5시40분 불 켜며 시작되는 하루
삽으로 볶는 매콤콩나물대패삼겹
“잘 먹었습니다” 한마디에 피로가 싹∼
물건은 말이 없다. 대신 흔적이 말한다. 게중 엉뚱한 자리에 있는 물건은 눈길을 붙잡는다. 왜 이것이 여기 있을까. 그 자리에 앉아 오래 바라보고, 쥐어 보고, 냄새도 맡아 본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내력을 아는 사람을 찾아 묻고 듣는다. 물건 뒤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 속에 우리 시대의 모습이 있다. 사건에 가려 보이지 않던 풍경을 줍는다. 거기, 그것이 있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김우진(21) 일병이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을 조리하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김우진(21) 일병이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을 조리하고 있다.

 

부대 조리실에는 삽이 있다. 흙을 푸는 삽이 아니다. 지난 달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취사장, 김우진(21)일병이 은색 삽을 대형 솥에 꽂고 구슬땀을 흘렸다.

 

김일병이 삽을 흔들며 지지고 볶기를 반복했다. 옅은 갈색을 띠던 돼지고기가 고춧가루·콩나물·대파 등과 어우러지더니 어느새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이 완성됐다. 수증기가 피어올라 얼굴을 가릴 때마다 삽자루를 쥔 손이 유독 빛났다. 부대의 별미를 책임지는 이날의 대형 솥에는 김일병의 춤추는 삽자루가 있었다.

 

하루는 어둠에서 시작된다. 최고참 송민준(23)병장은 오전 5시 40분 가장 먼저 일어나 조리실 불과 가스를 켠다. 그는 “어두운 새벽에 이 길을 걸어오는 게 가장 힘들지만 이만한 보람도 없다”고 말했다.

 

송 병장은 입대 전 집에서 라면 정도만 끓여 봤다. 칼을 처음 잡은 곳도 이곳 조리실이었다. 그는 “미원·다시다 같은 조미료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며 “낯선 조리용품들을 알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요리는 선임들에게 도제식으로 배웠다. 부식이 들어오면 식재료를 따로 빼놨다가 남는 시간에 칼질부터 알려주는 식이었다. 주 3~4회를 30~40분씩 배웠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조리병들이 직접 조리한 음식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조리병들이 직접 조리한 음식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조리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조리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전처리실에서 조리병들이 식재료를 받아 정리하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전처리실에서 조리병들이 식재료를 받아 정리하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조리병들이 계란찜을 만들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조리병들이 계란찜을 만들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전처리실에서 송민준(23) 병장이 양배추를 썰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전처리실에서 송민준(23) 병장이 양배추를 썰고 있다.

 

옆에는 야무진 손도 있었다. 박재민(21)일병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요리를 처음 시작했다. 아버지가 요리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요리학원 2년을 거쳐 조리 관련 대학에 진학했고, 입대 전 겨울방학에는 부산 시그니엘 호텔에서 실습 과정을 거쳤다.

 

호텔과 군대의 주방은 달랐다. 박일병은 “호텔은 요리 하나에 공을 들이기 때문에 많은 양을 한 번에 만들지는 않는다”며 “여기서는 대량을 한 번에 조리하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대는 그의 특기를 알고 취사장에 배치, 경력을 이어가도록 도왔다.

 

배식이 시작되면 취사병들은 식판 앞이 아니라, 배식대 뒤에 선다. 음식을 받으며 건네는 인사말을 항상 힘이 된다. 송 병장은 “‘잘 먹겠습니다’나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이 가장 흔하면서도 힘이 된다”고 말했다. 박일병은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날을 떠올렸다. 그는 “너무 더워서 기운이 없었는데 선임들이 잘 먹었다고 말하면서 지나가니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김우진(21) 일병이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을 조리하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김우진(21) 일병이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을 조리하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김우진(21) 일병이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을 용기에 담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김우진(21) 일병이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을 용기에 담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송민준(23) 병장이 야채무침을 만들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송민준(23) 병장이 야채무침을 만들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김우진(21) 일병이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을 조리하고 있다.
21일 강원 인제군 제3군수지원여단 식당 조리실에서 김우진(21) 일병이 매콤콩나물대패삼겹볶음을 조리하고 있다.

 

송병장은 전역하면 조리 관련 아르바이트부터 해볼 생각이다. 그는 이 주방에서 “하 가락이 있으니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저녁 7시, 마지막 식판이 퇴식구를 지나면 마감이 시작된다. 솥을 비우고 삽과 주걱을 제자리에 건다. 하루 세 번 불을 지폈던 취사장이 그제야 식는다.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어둠이 내린다. 취사병들은 생활관으로 돌아간다. 불은 내일 새벽 다시 켜진다. 모레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활짝 문을 연다. 불과 불 사이, 부대의 밥심을 책임지는 취사병의 하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