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트로트' 틀 깬 임영웅…10대부터 80대까지 고양 흔든 '히어로노믹스'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장르 한계 벗고 전 세대 아우른 무대
사흘간 9만여명 운집… 고양시 들썩여

큰 무대에 설수록 목소리에 힘을 빼고, 거대한 환호 앞일수록 태도를 낮춘다. 과시하지 않는 담백함으로 거대한 공간을 온전히 장악하는 역설. 톱 가수 임영웅이 스타디움을 대하는 방식은 언제나 그의 노래 성정을 닮아 있다.

 

임영웅이 4일 오후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펼친 2026 단독 콘서트 '아임 히어로 - 더 스타디움 2(IM HERO - THE STADIUM 2)' 첫날 무대는 대형 공연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갈하고 세련된 미학을 보여줬다. 2024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이은 두 번째 스타디움 입성이자,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그가 무대 장인으로서 어떤 완숙미의 궤도에 올랐는지를 증명한 자리였다.

임영웅. 물고기뮤직 제공
임영웅. 물고기뮤직 제공

◆압도하지 않고 품어내는 '공간의 장인'

 

스타디움 공연의 성패는 광막한 허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두 번째 스타디움에 오른 임영웅은 관객을 압도하려 들기보다, 거대한 경기장 구석구석으로 온기를 배달하는 유연한 공간 설계를 택했다.

 

아낌없이 투입된 제작비는 단순한 시각적 과시가 아닌, 관객의 시선과 감정을 배려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인생찬가'에서는 초대형 워터스크린이 그라운드를 가로지르며 깊은 서사를 연출했고, '들꽃이 될게요'에선 턴테이블 리프트가 입체적인 동선을 그려냈다.

 

사각지대를 지우는 이동차 설계도 돋보였다. '나는야 히어로'와 '보금자리'를 부를 때 그라운드와 스탠드 사이를 촘촘히 훑은 이동차는 무대와 객석의 물리적 단절을 무력화했다. 밴드 7명, 브라스 3명, 코러스 5명에 더해 모교인 경복대학교 합창단 35명, 풍물놀이 24명, 안무팀 29명 등 100여 명에 달하는 출연진은 거대한 경기장 음향의 빈틈을 단단한 질감으로 채웠다.

 

'미워요', '히어로(HERO)', 앙코르곡 '모이세'에서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와 정교한 드론쇼는 같은 날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세계불꽃축제를 찾지 못한 관객들의 아쉬움마저 털어냈다. 특히 풍물패의 합은 서구식 스타디움 팝 쇼의 문법에 한국 고유의 잔치판과 대동(大同)의 미학을 절묘하게 결합해낸 명장면이었다.

 

◆'트로트'의 외연을 지운 어덜트 컨템포러리의 넓은 품

 

이날 약 3시간 동안 앙코르를 포함해 선보인 총 29곡의 세트리스트는 대중이 관성적으로 씌워온 장르의 틀을 가볍게 벗어던졌다.

 

데뷔 10주년 기념 앨범에 실린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한 데뷔곡 '미워요'로 포문을 연 그는 '사랑은 늘 도망가', '모래 알갱이', '순간을 영원처럼', '무지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통해 한국형 '어덜트 컨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의 정점을 보여줬다. 미국 로큰롤 그룹 '포시즌스' 출신 프랭키 밸리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도 들려줬다.

 

임영웅 보컬의 힘은 절제에 있다. 억지로 고음을 내지르거나 기교를 전시하지 않고, 힘을 뺀 상태에서 저음의 단단한 밀도와 맑은 울림으로 감정의 정곡을 짚는다. 이적이 작사·작곡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의 유려한 다이내믹과 이제 자신의 대표곡이 된 '어느 60대 노부부이야기'(원곡자 김목경)에서 보여준 여백의 호흡은 과장 없는 정서의 직진성을 발휘했다.

 

오는 8일 발매되는 스페셜 디지털 앨범 '아임 히어로 10(IM HERO 10)'의 신곡들을 미리 펼쳐 보인 지점도 흥미로웠다.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한 타이틀곡 '또또'는 특유의 세련된 귀여움과 팝 멜로디로 객석을 흔들었고, 뉴욕의 반짝이는 감성을 담은 '뉴욕(New York)', 라틴 무드의 '바일라(Baila)', 레게 힙합 '아비앙또(A bientot)', EDM 기반의 '홈(Home)' 등은 그가 끊임없이 보폭을 넓히는 현재진행형 뮤지션임을 분명히 했다.

 

◆배려가 빚어낸 세대통합, 일상을 바꾼 '히어로노믹스'

 

이날 객석은 특정 세대에 머물지 않는 음악적 확장을 숫자로 증명했다. 예매처 놀(Nol) 티켓 통계에 따르면 10대 1.8%, 20대 16%, 30대 30.4%로 청년층 비율이 절반에 달했다. 부모의 티켓을 대신 예매했다가 현장에서 직접 음악을 듣고 팬이 됐다는 2030 세대의 반응처럼, 10대부터 80대 이상 어르신까지 한자리에 모여 음악을 공유했다.

 

관객을 대하는 그의 태도 역시 노련하면서도 깍듯했다. 임영웅은 "제 모습 담아가고 싶으셨죠? 여러분을 위해 지금부터 1분간 저를 카메라에 마음껏 담을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다"면서도 "최대한 앞분의 시야를 가리면 안 된다. 여러분이 사진작가니까 원하는 포즈를 말씀해 주시면 다 하겠다"며 배려와 유머가 공존하는 1분 포토타임을 이끌었다. "향후 10년도 꼭 영웅시대와 함께하고 싶다. 영웅시대가 모두 한자리에 함께하는 그날까지 노래하겠다"는 말에는 담백하지만 묵직한 진심이 실려 있었다.

 

공연장 밖 풍경도 하나의 거대한 축제였다. 이른 시간부터 고양시 일대 식당과 카페는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관객들로 붐볐고, 시내버스마다 큼직한 공연장 안내 문구가 내걸렸다. 표를 구하지 못해 주경기장 밖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소리로 무대를 함께한 '밖탠딩' 관객들의 모습까지, 문화 현상이 도시의 표정을 바꾸는 '히어로노믹스'의 파급력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스타디움이라는 공간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대의 거대함을 뽐내는 일이 아니라, 그 광대한 공간을 찾는 개개인의 삶을 조용히 품어 안을 줄 안다는 뜻이다. 고양의 밤하늘 아래 선 임영웅은 과시하지 않는 목소리와 단정한 태도로, 대형 공연이 전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포근한 위로를 완성해냈다. 5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6일 마무리된다. 사흘 간 9만여명이 운집한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