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한우와 굴비, 과일세트가 줄지어 놓이던 선물 매대가 달라지고 있다. 종아리 마사지기부터 기계식 키보드, 디퓨저, 캐릭터 캠핑용품까지 등장했다. 받는 사람의 연령과 취향을 따지는 소비가 늘면서 추석 선물의 무게중심도 ‘먹거리’에서 ‘라이프스타일’로 빠르게 넓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직원들에게 명절 선물을 지급하는 기업 고객 사이에서 변화가 뚜렷하다. 젊은 임직원이 늘면서 모두에게 같은 상품을 나눠주기보다 실용성과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찾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올해 추석 라이프스타일 선물세트를 총 119종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추석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대표 상품부터 기존 명절 선물의 문법과 거리가 멀다. 풀리오 종아리 마사지기(13만9000원), 에포메이커 기계식 키보드(16만9000원), 에이치바이에이치(HBYH) 시계(9만9000원), 클라우망 타올 세트(8만5000원), 호텔도슨 디퓨저(5만6000원) 등을 선물세트로 구성했다.
칫솔과 치약도 디자인 상품이 됐다. 팝아트를 접목한 브레온팝 칫솔·치약 세트는 6만7000원, 민트초콜릿·레몬소르베 등 이색적인 맛으로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알려진 투스티 치약 4종 세트는 4만8000원이다. 영국식 빈티지 디자인을 앞세운 캐스 키드슨 바디용품 세트도 판매한다.
현대백화점은 기업 내 MZ세대 임직원 비중이 높아지면서 기업 고객들이 명절 선물에서도 실용적이면서 유행을 반영한 제품을 찾는 사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건강관리와 디지털, 홈데코 등 젊은 직장인의 생활과 맞닿은 상품군을 집중적으로 늘렸다.
고가 라이프스타일 상품까지 추석 선물 영역으로 들어왔다. 현대백화점은 앞서 올해 추석 예약판매 상품으로 프랑스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 텀블러 2개 세트(38만원), 스웨덴 침대 브랜드 헤스텐스 기능성 베개(100만원), 뱅앤올룹슨 무선 이어폰(72만7000원) 등을 내놨다.
이 같은 변화는 백화점 매대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업 임직원 선물 시장에서는 아예 받는 사람이 직접 상품을 고르는 방식이 커지고 있다.
경영지원 전문기업 이트너스의 기업 전용 선물 플랫폼 ‘감동타임’은 올해 추석 기획전에 약 600종의 상품을 마련하면서 건강·웰니스와 라이프스타일·키친웨어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다. 기존 정육·수산, 과일·농산물 중심에서 선택지를 넓힌 것이다.
감동타임은 현재 약 2000개 기업, 15만명 이상의 임직원이 이용하고 있다. 회사가 직원 명단과 예산을 정하면 임직원이 직접 원하는 선물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이트너스는 최근 기업 고객 사이에서 이 같은 ‘선택형 선물’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물의 기준이 ‘무엇이 무난한가’에서 ‘받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족이나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전통적인 명절 선물뿐 아니라 복리후생 성격의 임직원 선물 시장이 커지면서 변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편의점은 한발 더 나갔다.
CU는 올해 추석 선물세트를 710여종으로 늘리고 포켓몬 상품과 캠핑·골프용품, 안마의자, 로봇까지 한꺼번에 선보였다. ‘피카츄 사과세트’는 2만9800원, 포켓몬 캡슐 뽑기 머신은 6만5000원, 잠만보 텐트 패키지는 14만9000원이다. 포켓몬 골프공까지 포함하면 관련 선물만 20종에 달한다.
건강과 휴식을 겨냥한 270만원대 안마의자와 168만원 리클라이너, 소형 마사지기 10종도 준비했다. 가장 눈에 띄는 상품은 3100만원짜리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스마트 반려견 로봇과 AI 바둑 로봇 등도 추석 카탈로그에 들어갔다.
이색 선물 확대에는 실제 소비가 뒷받침되고 있다. CU의 올해 설 선물 매출은 전년보다 13.8% 증가했는데, 10만원 이상 상품 매출은 39.2% 뛰었다. 보조배터리와 충전기, 손난로 등 기존 상품을 재미있게 재해석한 제품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통적인 명절 선물인 건강식품도 세대별로 갈라지고 있다.
CJ웰케어는 올해 추석 선물을 5060 부모 세대와 3040 직장인으로 나눠 제안했다. 중장년층에는 흑삼·침향·녹용을 활용한 ‘한뿌리’를, 3040 직장인에게는 진쌍화와 생기맥문동, 배도라지 등 일상에서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제일건강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올리브오일 캡슐과 레몬즙, 이중제형 멀티비타샷 등 최근 웰니스 소비를 반영한 제품도 추석 선물군에 포함했다. 건강식품조차 ‘어른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라는 기존 공식을 벗어나 생활습관과 연령을 기준으로 세분화되고 있는 셈이다.
백화점에서도 변화는 이어진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추석 예약판매 품목을 370여개로 지난해보다 25% 늘리는 동시에 ‘윤해운대’ 갈비와 ‘김수사’ 간장게장 등 유명 식당 메뉴를 선물세트로 만들었다. 전통적인 한우·굴비에서 벗어나 평소 즐기던 미식 경험 자체를 선물하는 방식이다.
유통업계의 추석 경쟁도 결국 ‘누구에게 주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한우·굴비처럼 실패 확률이 낮은 보편적인 상품을 일괄적으로 고르던 방식에서 벗어나 키보드와 마사지기, 디퓨저, 캐릭터 상품처럼 취향을 세밀하게 겨냥하는 식이다.
특히 기업 선물 시장에서는 이런 흐름이 더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임직원 연령과 관심사가 다양해질수록 ‘모두에게 무난한 하나’보다 ‘각자 원하는 하나’를 고르게 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도 만족도를 높이기 쉽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 선물 매대에 기계식 키보드와 로봇까지 등장한 배경이다. 명절 선물의 기준이 가격과 격식에서 취향과 경험으로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