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옷과 명품을 사고 식품관에 들르던 공식이 뒤집히고 있다. 이제는 유명 맛집과 디저트를 찾아 백화점에 들어온 고객을 패션과 명품 매장으로 끌어올리는 전략이 핵심이 됐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 앞다퉈 대규모 미식 공간을 만드는 이유다. 올해 상반기 백화점 3사의 식음료(F&B) 매출 증가율은 나란히 20%를 넘어 전체 매출 성장률마저 앞질렀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에는 현대백화점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현대백화점은 무역센터점 10층을 다이닝과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공간으로 전면 개편했다. ‘당신이 꿈꾸는 도시의 모든 것(The WORLD is YOURS)’을 콘셉트로 세계적인 미식 브랜드와 스타 셰프 레스토랑, 브런치 카페와 휴식 공간을 한 층에 집약했다.
공간의 중심에는 813㎡(약 246평) 규모의 ‘에피원(EP.1)’이 들어섰다.
여러 다이닝 매장을 연결하는 허브이자 고객이 머물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밤하늘의 오로라에서 영감을 받은 조명과 식재를 배치하고 별도의 시그니처 향까지 적용했다.
10층과 연결된 11층에는 야외 정원 ‘노바스 파크(NOVAS PARK)’도 조성했다.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되며 낮에는 정원, 밤에는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휴식 공간으로 바뀐다. 현대백화점 공식 홈페이지에도 10층 다이닝 공간과 연계한 정원으로 소개돼 있다.
핵심은 역시 먹거리다.
690㎡(약 209평) 규모의 이탈리안 그로서란트 ‘이탈리(EATALY)’가 강남에 처음 진출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과 더현대 서울 등에서 운영해온 이탈리를 무역센터점에서는 다이닝 기능을 한층 강화했다.
스페인산 ‘조스퍼 차콜 오븐’을 활용한 스테이크와 그릴 요리부터 화덕 피자, 파스타, 베이커리와 디저트까지 한 공간에 담았다. 현대그린푸드는 무역센터점 이탈리에 숯불을 활용한 시그니처 메뉴 10종과 코스 요리도 새로 선보였다.
스타 셰프도 전면에 내세웠다.
현대백화점 자체 카페 브랜드 ‘틸화이트’는 ‘뽀모’의 유기영 셰프와 손잡고 올데이 브런치 카페로 변신했다. 토마토 치킨 수프와 김치볶음밥, 브라타치즈 샐러드 등 15종의 브런치 메뉴를 판매한다.
뉴욕에서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임정식 셰프가 선보이는 ‘곰탕LAB’도 들어섰다. 한식의 대표 음식인 곰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브랜드다. 후난 지역 가정식을 재해석한 중식 비스트로 ‘js가든 샹화’, 후쿠오카 미쉐린 스타 셰프의 라멘 전문점 ‘니시무라멘’, 부산 해운대에서 이름을 알린 일본식 돈카츠 전문점 ‘반도카츠’ 등도 한 층에 모였다.
현대백화점이 강남 핵심 점포의 최상층을 미식 공간으로 바꾼 배경에는 이미 숫자로 확인된 백화점 업계의 ‘F&B 효과’가 있다.
가장 공격적으로 움직인 곳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다.
신세계는 2024년 2월 5300㎡, 약 1600평 규모의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 파크’를 시작으로 ‘하우스 오브 신세계’, ‘신세계 마켓’, 프리미엄 델리 전문관을 잇달아 열었다. 스위트 파크에만 개장 당시 43개 디저트 브랜드를 한꺼번에 끌어들였다.
지난해 8월 1200평 규모 델리 전문관까지 문을 열면서 약 2년에 걸친 식품관 리뉴얼을 끝냈다. 완성된 식품관 규모는 약 6000평으로 국내 백화점 가운데 최대 규모다. 인접한 센트럴시티 파미에스테이션까지 합하면 미식 관련 공간은 약 1만평에 달한다.
효과도 나타났다.
신세계 강남점 식품관은 리뉴얼 완성 1년 만인 이달 누적 구매 고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여경래 셰프와 협업한 ‘구오만두’, 김도윤 셰프의 ‘서연’ 등 유명 셰프와 협업한 콘텐츠도 잇달아 투입하고 있다.
롯데백화점도 대규모 리뉴얼 점포를 중심으로 식품관을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이달 전관 리뉴얼을 끝낸 노원점이다.
롯데는 지난해 3월부터 17개월 동안 노원점 전체 영업면적의 약 80%, 1만평을 뜯어고쳤다. 마지막 퍼즐로 지하 1층에 푸드홀과 디저트 공간을 넣었다.
새 푸드홀에는 유명 맛집 12곳과 베이커리 13곳 등 25개 브랜드가 들어섰는데 모두 노원점 신규 브랜드로 채웠다. 프리미엄 식료품점 ‘레피세리’도 함께 선보였다.
실적도 움직였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노원점 식품관은 리뉴얼 이후 매출이 20% 늘었다. 청과와 돈육, 반찬 등 일부 상품군은 30~50% 성장했다.
백화점들이 비싼 영업 공간을 식당과 디저트 매장에 내주는 이유는 올해 실적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올해 상반기 롯데백화점의 F&B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 증가율 15%를 5%포인트 웃돌았다. F&B 구매 고객도 15%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의 F&B 매출 증가율은 29.1%로 3사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전체 매출 증가율 23.6%보다 5.5%포인트 높았다. 식품관 구매 고객은 2400만명으로 11% 늘었고 이 가운데 신규 고객 비중이 30%에 달했다.
현대백화점도 F&B 매출이 22.8% 증가했다. 전체 매출 증가율 20.7%를 웃돌았다. 식품관 방문객은 10.3% 늘었고 신규 고객 비중은 24%였다.
온라인 쇼핑으로 명품과 패션, 생활용품까지 살 수 있는 시대지만 ‘맛’과 ‘공간’은 온라인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점도 백화점에는 기회다.
유명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왔다가 쇼핑하고, 인기 디저트를 사러 왔다 다른 층까지 올라가는 식으로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관 집객이 패션·명품·잡화 구매로 이어지는 이른바 ‘연계 구매’ 효과다.
현대백화점 역시 이미 판교점에서 이 전략의 효과를 확인했다. 판교점에는 1만3860㎡, 약 4192평 규모 식품관에 120여개 F&B 매장이 들어서 있다. 현대백화점은 판교점의 초대형 식품관 전략을 더현대 서울 기획에도 활용했다고 설명한다.
무역센터점 10층 리뉴얼도 같은 흐름의 연장선이다. 과거 백화점 식당가가 쇼핑을 마친 고객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맛집 자체가 고객을 백화점으로 불러들이는 ‘첫 번째 목적지’로 바뀌고 있다.
백화점 3사의 경쟁도 명품 브랜드 몇 개를 더 유치하느냐에서 ‘누가 더 강력한 먹거리를 독점하느냐’로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