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를 주도하던 반도체 대형주가 조정을 받는 사이 2차전지 테마가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 매력이 커진 2차전지 업종으로 투자 자금이 쏠리는 양상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난 우려와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재편 정책까지 맞물리면서 2차전지 테마의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단순한 순환매를 넘어 배터리 산업의 수요처가 전력망 인프라로 확장되는 구조적 흐름으로도 해석하고 있다.
◆2차전지·ESS ETF 수익률 싹쓸이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1개월(8월4일~9월4일) ‘TIGER 2차전지TOP10레버리지’는 47.43% 급등하며 국내 증시에 상장된 전체 ETF 중 수익률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국내 2차전지 관련주의 일간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KODEX 2차전지산업레버리지’는 40.48% 오르며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기간 전체 ETF 수익률 상위 15개 상품 중에서도 10개가 2차전지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테마로 집계되는 등 섹터 전반의 강세가 확인됐다.
일례로 전고체 배터리와 차세대 음극재 기술에 투자하는 ‘SOL 전고체배터리&실리콘음극재’는 한 달간 23.20% 상승했다. 이어 ‘RISE 2차전지액티브’(22.61%), ‘TIGER 2차전지TOP10’(22.56%), ‘KIWOOM K-2차전지북미공급망’(22.25%), ‘BNK 2차전지양극재’(22.07%), ‘KODEX 전고체배터리ESS TOP2플러스’(22.07%) 등 다수의 2차전지 상품이 20%대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도체주가 조정받는 동안 덜 오른 2차전지로 자금이 옮겨간 데다 전기차를 넘어 전력망으로 배터리 수요처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투자심리를 끌어올린 결과로 풀이된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많이 오른 반도체에서 소외 업종으로 자금이 이동한 순환매 성격이 분명히 존재한다”라며 “이번 주가 반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터리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정책과 시장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AI 전력난과 미국 정책 수혜
2차전지 상품의 가파른 수익률 상승에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와 미국의 전력망 보호 정책이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전기차 보급 확대로 수요를 창출했던 배터리 업계의 중심이 전력망 안정을 위한 인프라 투자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의 잇따른 정책 드라이브는 국내 배터리주에 강력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력망 보호를 위한 국가 비상사태 행정명령에 서명해 중국산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등의 규제를 시사한 데 이어, 폐배터리 중간재인 블랙매스 수출 금지 조치까지 본격 시행됐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ESS 시장의 진입 기준이 안보와 현지 생산망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선제적으로 북미 거점을 확보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반사이익이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삼성증권은 “미국 전력설비 행정명령은 국내 ESS 관련 업체들의 수주 확대와 캐파 증설로 이어질 수 있는 긍정적인 이벤트”라며 “탈중국 공급망 정책이 구체화되는 만큼 북미 현지 생산능력을 갖춘 국내 배터리 셀 및 소재 업체들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AI 데이터센터 발주가 ESS 수요를 끌어올리며 국내 셀 업체들의 북미 ESS 출하 가속화 구간에 진입했다”라며 북미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수혜를 전망했다.
◆“실적 기반 옥석 가리기 필수”
업계에 따르면 가파르게 성장하는 북미 ESS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현지 생산라인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수익성이 높은 리튬인산철(LFP) 기반 ESS용 셀 공급이 본격화되며 실적 기여가 가시화할 것이라는 것이 전망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다만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며 철저한 실적 기반의 옥석 가리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2023년 상반기 고점에 진입한 투자자들의 경우 단기 반등만으로 원금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에코프로는 2023년 7월26일 장중 30만1959원까지 치솟았으나 현재 8만2400원으로 고점 대비 72.7% 하락했다. 같은 날 67만2705원을 기록했던 포스코퓨처엠 역시 현재 18만3600원으로 72.7% 급락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11월11일 고점(62만9000원) 대비 43.0% 빠진 35만8500원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 장기적 추세 전환을 위해서는 단순한 정책 기대감을 넘어 대규모 수주 물량이 실제 공장 가동률 상승과 분기 흑자 기조로 이어지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보영 연구위원은 “하반기 이익이 분기별로 개선되고 ESS 수주까지 확대된다면 이번 반등이 단순한 순환매를 넘어 실적 장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