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호르무즈해협 통행 자유를 위한 파병에 대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이 이란 전쟁과 관련해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과 파병 실효성, 정치적 부담, 이란의 반발 등이 겹치면서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6일 정부와 군 당국 등에 따르면, 군사적 기여 방안으로 파병을 포함한 선택지들을 두고 검토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한적인 전력을 보낼 경우 실질적인 기여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기여 수준을 높이면 군사적 부담과 정치적 비용도 함께 커질 수 있다.
포항=뉴스1
현재 파견 전력으로는 해군 P-8A 해상초계기와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소속 폭발물처리반(EOD) 등이 매우 유력한 상태다. P-8A 해상초계기는 2대를 보내려 했으나 대북 군사대비태세 유지 필요성이 제기됐고, P-3CK 해상초계기가 지난해 5월 추락사고 이후 작전활동에 여전히 제약을 받는 점 등을 감안해 1대로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파견 함정은 현재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 호르무즈해협에 보낼 만한 군함이 마땅치 않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당초 1만t급 군수지원함 소양함 파견이 거론됐으나 해군이 함정을 인수한 직후부터 진동 등 기술적 문제가 있어 제외되는 모양새다. 군 소식통은 “전투함은 호르무즈해협에서 별다른 효용이 없고, 소해함은 크기가 작고 속도도 느려서 검토 초기 단계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무인기뢰처리기(MDV)를 비롯한 무인 전력 파견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무인기뢰장비나 음파탐지기 등은 소해함에서 운용한다. 소해함이 파병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무인장비 파견 가능성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호르무즈해협 파견 전력에서 군함이 제외되는 것이 확정될 경우 초계기 승조원과 지원인력 및 폭발물처리반을 중심으로 100명 이하의 소규모 파병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소규모 파병을 단행하려 해도 상당한 문제가 남는다. 미국이 원하는 부분과 한국이 제공하려는 전력 간 차이가 작지 않아 갈등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미국은 자국 해군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기뢰 제거(소해) 관련 지원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파견할 전력으로 분류되는 P-8A는 해상 감시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나 기뢰 제거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한국 해군 P-8A와 미 해군 P-8A의 세부 성능에 차이가 있어 데이터 송·수신 체계 등에서 미군과의 조율도 필요한 상태다. 폭발물처리반은 특정 항로·해역에 대규모로 부설된 기뢰들을 제거하는 소해 임무가 아닌, 잠수를 통해 연안에 설치된 개별 기뢰를 정밀제거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한국군 자이툰부대가 파병됐던 이라크전쟁과는 다른 국면도 정부에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라크전쟁은 영국·호주 등이 함께 참전했고, 다수의 우방국이 전후 안정화 작전에 파병을 했다. 반면 이란 전쟁에선 영국·프랑스 등이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군함을 보낸 적은 있으나 해협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는 않았다. 대다수 나라는 휴전이 명확해지면 군을 투입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호르무즈해협 기여 방안과 관련해 군사적 기여 가능성 자체는 열어두면서도 한반도 대비태세와 국내 정치적 파장까지 함께 따져보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 검토 단계이며 정해진 것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대비태세에 큰 손상이 있지 않은 범위 내에서는 운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며 “호르무즈해협에서 실질적으로 기여하려면 한반도 대비태세를 고려해야 하고, 그 부분에 대해 여러 가지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비태세에 손상이 없는 범위’를 언급한 것은 파병을 포함한 군사적 기여도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파견 전력과 임무, 규모에 따라 한반도 방위태세에 미칠 영향이 달라지는 만큼 선택지는 단순하지 않다.
국내 정치적 상황도 청와대로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파병 문제가 새로운 부담으로 더해질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도 공개적인 파병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만큼 실제 파병 논의가 본격화하면 여권 내부 갈등으로 번질 여지도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을 놓고 여권이 찬반으로 갈리며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았던 전례도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추진해 온 범여권 통합·연대 흐름에도 파병 문제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도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시민사회단체 초청 간담회에서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관련해 “진척된 것은 없다”며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역시 국회 동의가 필요한 구체적인 파병안을 마련한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란 측은 한국의 파병 가능성에 경고를 보냈다. 레바논의 친헤즈볼라 매체 알마야딘이 지난 4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란의 한 안보·정치부문 고위 관리는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의 불법적인 군사작전에 협력하도록 강요하는 미국의 압력에 응해서는 안 된다”며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이 이란에 맞서는 행동을 한다면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 및 전쟁에 대한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