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훌쩍 넘긴 배우 선우용여가 서울 동대문 시장 한복판에서 수천만원대 명품 의상을 단돈 50만원대에 재현해 내는 현장을 직접 증명했다. 단순한 절약을 넘어 오랜 세월 몸으로 체득한 생활인의 지혜가 스크롤을 멈추게 만들고 있다.
빛나는 화려함 뒤편에 가려진 진짜 삶의 기술은 언제나 일상에서 발견된다. 최근 유튜브 채널 ‘순풍 선우용여’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선우용여는 원단을 직접 구매해 의류를 제작하는 실용 노하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대중 예술계의 최전선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녀가 과거 미국 이민 시절 직접 봉제공장을 운영했던 이력은 이번 행보의 실질적 밑바탕이 되었다. 카메라 앞에서 가식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의 선택은 예능적 재미를 떠나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팔순의 나이에도 직접 발로 뛰며 가치를 찾아내는 실천은 소비 중심의 사회에 뜻밖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선우용여가 향한 곳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수입 원단을 취급하는 동대문의 한 전문 상점이었다. 매장에는 돌체앤가바나와 샤넬 등 세계적인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원단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상점 내부를 둘러보며 옷의 가치를 판별하는 그녀의 눈빛은 예리했다. 선우용여는 좋은 옷의 기준을 명확하게 짚어냈다. ‘진짜’ 좋은 옷은 이음새의 마감을 보면 안다는 것이다. 바깥으로 한 번 박고 안으로 접어서 박는 세밀한 공정이 들어가야 진정한 명품의 자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중의 저가 의류와 차별화되는 포인트를 정확히 포착한 대목이다. 실제로 제작에 소요된 비용은 수입 원단값 21만원과 공임비 35만원, 안감 비용 약 2만3000원을 합산해 투피스 한 벌당 총 58만원 선이었다. 100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의 가치를 17분의 1 수준의 실속 있는 비용으로 구현해 낸 셈이다. 한편 상가 내부에 사람이 줄어든 현실을 마주한 선우용여는 국내 의류 제조 기반의 위축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과거 이민 시절 중국인들이 멀리 떨어진 자국의 시장을 찾아가던 일을 떠올리며 우리 것의 소중함과 국산 제품을 향한 애정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우용여의 단단한 생활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65년 TBC 무용수 공채 1기로 데뷔한 그녀는 젊은 시절 드라마 섭외 1순위를 도맡았던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국산 자동차와 화장품 광고 모델을 휩쓸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군림했으나 인생의 궤적은 탄탄대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25살의 나이에 마주한 혼전 임신과 광장동 워커힐 호텔로의 도피, 반대를 뚫고 치른 결혼 생활의 실상은 무거운 빚더미였다. 남편이 남긴 막대한 채무를 떠안은 채 닥치는 대로 일하며 가정을 지켜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원망 대신 자신에게는 일복이 있다며 담담하게 빚을 갚아나갔고, 쉼 없이 카메라 앞에 서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지만 삶의 위기는 끊이지 않았다.
인생의 고비는 또다시 불쑥 찾아왔다. 지난 2016년 건강 프로그램 녹화 도중 뇌경색 초기 증세를 겪으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것이다. 다행히 동료 연예인과 의료진의 신속한 대처로 응급실로 이송되어 목숨을 건졌고, 1년여의 투병 끝에 기적처럼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전환점이 되었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후 그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고수하던 삶의 방식을 과감하게 내려놓았다. 남은 인생은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 쓰겠다는 결심과 함께, 내 몸에 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며 현재를 온전히 즐기는 삶으로 노선을 바꿨다.
최근 그가 선보이고 있는 유튜브 채널 속 행보는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채널임에도 평균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기며 젊은 세대까지 매료시키고 있다. 화려한 저택과 한강뷰가 보이는 집에서 여유를 즐기면서도, 1000만원짜리 명품 옷 대신 동대문 수입 원단 상점을 찾아 직접 투피스를 만들어 입는 검소함은 보는 이들의 허를 찌른다.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부학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벤츠 E 450을 직접 몰며 반려견과 소소한 일상을 만끽하는 그의 일면은, 대단한 성공 스토리보다 훨씬 더 진한 울림을 안긴다.
대중이 선우용여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보여주는 노련한 삶의 방식 때문이다. 빚더미 속에서도, 죽음의 문턱인 뇌경색 앞에서도 그는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끝에 자신만의 값진 성취를 일궈냈고, 이제는 그 삶을 멋지게 소비하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1000만원짜리 명품을 50만원으로 만드는 감각보다 더 놀라운 것은, 80년의 세월이 남긴 상처를 유쾌한 웃음과 당당함으로 치환해 낸 그의 진짜 자산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자기 삶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그 꼿꼿한 발걸음이야말로, 노배우의 품격이 묻어난 찬란한 삶의 진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