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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빨리 준다더니 주문부터 끊길 판”…갈비탕 사장의 ‘35일 역설’

직매입 대금 지급기한 60→35일…납품사 자금 회전 개선 기대
중소 제조사, 유통업계 정산 부담 따른 발주·입점 축소 ‘우려’
평균 지급일 이미 27.8일…‘빠른 정산’ ‘판로 유지’ 균형 과제

“대금을 하루라도 빨리 받는데 왜 반기지 않느냐고요? 발주가 줄어들면 결국 그 부담은 우리 같은 작은 제조업체로 돌아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pixabay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pixabay

갈비탕과 순댓국을 만드는 중소 식품업체 대표가 납품대금 지급기한 단축을 앞두고 내놓은 걱정이다. 납품업체가 돈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유통업체의 자금 부담을 키워 오히려 중소업체 상품의 발주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납품대금 회수를 앞당기자는 취지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문제는 지급기한을 일률적으로 줄였을 때 유통업체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3일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직매입 거래의 대금 지급기한을 상품 수령일로부터 현행 60일 이내에서 35일 이내로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약매입·위수탁·매장임대 거래는 월 판매마감일부터 40일 이내였던 지급기한이 20일로 단축된다.

 

직매입 거래를 월 1회 모아 정산하는 경우에도 매입 마감일부터 20일 안에 지급해야 한다.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심사를 남겨두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처음 내놓은 개선안은 직매입 지급기한을 30일로 줄이는 내용이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35일로 조정됐다.

 

제도 개선의 취지는 분명하다. 납품업체가 상품대금을 빨리 회수하면 생산과 투자에 쓸 운전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유통업체의 경영이 악화됐을 때 장기간 쌓인 미정산 대금이 납품업체의 연쇄 자금난으로 번지는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정산이 지나치게 늦었던 업체도 있었다.

 

공정위가 11개 업태 132개 대규모 유통업체를 조사한 결과 직매입 대금의 평균 지급기간은 27.8일이었다. 하지만 지급기간이 길었던 9개 업체는 평균 53.2일이 걸렸다.

 

전체 평균의 거의 두 배다. 일부 업체의 지급기간은 법정 상한인 60일에 근접했다. 이번 개정안이 겨냥한 것도 사실상 이런 ‘늦장 지급’ 관행이다.

 

정작 일부 중소 납품업체에서는 다른 걱정이 나온다.

 

경기 김포에서 갈비탕과 순댓국 등을 생산하는 초원식품 이규진 대표는 “직매입은 유통사가 상품을 사들이고 판매되지 않은 상품의 책임도 부담하는 방식이어서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거래”라고 말했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 역시 직매입을 유통업체가 판매되지 않은 상품에 대한 판매책임을 부담하는 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이 대표가 걱정하는 것은 정산 시점보다 발주량이다.

 

그는 “유통사가 상품을 사고 지금보다 대금까지 빨리 지급해야 한다면 매입에 쓸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며 “대금을 며칠 먼저 받는 것보다 발주가 10~20% 줄어드는 게 중소 제조업체에는 훨씬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10~20%는 이 대표가 예상한 감소 폭이다. 정산기한 단축이 실제 이 정도의 발주 감소로 이어진다는 공식 통계나 실증 결과는 아직 없다.

 

식품 제조업체는 발주 감소에 특히 민감하다. 원료를 확보하고 생산 일정을 미리 잡은 상태에서 주문량이 갑자기 줄면 완제품 재고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기한까지 짧다면 보관비뿐 아니라 폐기 부담도 커진다.

 

이 대표는 “대금을 빨리 받는 것 자체를 싫어할 업체가 어디 있겠느냐”며 “문제는 그 대가로 거래량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라고 했다.

 

중소업체들이 우려하는 또 다른 지점은 유통업체의 상품 선택이 보수적으로 바뀔 가능성이다.

 

벽지 제조업체 KGS금강의 김윤경 대표는 “인지도가 높고 판매량을 예측하기 쉬운 대기업 제품과 판매 이력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기업 제품이 있다면 유통사 입장에서는 어느 쪽을 먼저 매입할지 뻔하지 않겠느냐”며 “이제 막 판로를 넓히려는 업체는 입점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세제 제조업체 성진켐의 김근태 대표도 “중소 제조업체가 대기업이나 대형 유통사와 거래 조건을 대등하게 협상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정산 속도뿐 아니라 기존 거래와 발주량이 유지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업체가 직매입 비중을 낮추고 특약매입이나 위수탁 거래를 확대할 가능성도 업계가 제기하는 우려 가운데 하나다.

 

거래 방식에 따른 차이는 크다. 직매입은 유통사가 미판매 상품에 대한 판매책임을 부담한다. 반면 특약매입은 팔리지 않은 상품을 일정 조건 아래 반품할 수 있고, 위수탁 거래는 상품이 판매된 뒤 수수료를 제외한 대금을 납품업체에 지급하는 구조다.

 

반론도 있다.

 

유통업체 전체의 직매입 대금 평균 지급기간은 이미 27.8일이다. 새 법정기한인 35일보다 일주일 이상 짧다. 실제 영향은 현재 35일을 넘겨 지급하는 일부 업체에 상대적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의 2025년 유통분야 납품업체 서면실태조사에서도 직매입 대금을 법정기한인 60일보다 늦게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9%였다. 전년 6.3%에서 낮아졌다. 정산 지연 문제가 개선되고 있지만 피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중소·소상공인 업계의 의견도 하나로 모이는 것은 아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정무위 의결 직후 “거래의 공정성을 높이고 소상공인의 자금 유동성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개정안 처리를 환영했다.

 

오히려 직매입 지급기한을 15일까지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만큼 35일도 충분히 짧지 않다는 입장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35일’ 이후”라며 “지급기한 단축이 납품업체의 자금 사정을 얼마나 개선할지, 유통업체가 발주 축소나 거래 방식 변경으로 대응할지는 법 시행 이후에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 납품업체에 필요한 것은 빠른 정산만이 아니다”라며 “돈을 제때 받으면서도 판로를 지키는 것, 둘 다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