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사망 50주기를 맞아 중국에서 그가 내세웠던 평등주의적 이상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둔화와 불평등, 치열한 취업 경쟁에 지친 청년층 일부가 마오 시대를 이상화하는 가운데 당시의 참상을 둘러싼 공개적인 논의는 여전히 제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중국 최후의 마오주의 마을’로 불리는 허난성 난제촌에서는 주민들이 여전히 ‘공동 소유’라는 마오주의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마오의 벽화와 사회주의 구호가 붙어 있고, 공동 소유 기업을 통해 주민들에게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이 마을의 대학생 셰카이웨(22)는 AFP에 “나는 여전히 그를 매우 존경한다”며 “마을의 젊은이들도, 사실 나 자신도 예전 사람들만큼 정신력이 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은 더 순수했다”고 말했다. 마오는 그가 태어나기 거의 30년 전인 1976년 9월9일 사망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젊은이들의 마오에 대한 존경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베이성 스자좡에서 같은 반 학생들과 마오 동상을 찾은 왕즈하오(20)는 “우리는 마오 주석을 매우 존경하고 숭상한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라며 “신중국 건국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난제촌에서 북쪽으로 약 500㎞ 떨어진 산시성 다자이에서도 관광객들은 마오 시대를 추억했다. 주민들이 메마른 언덕을 개간해 관개 농지로 바꾼 이곳은 마오가 한때 전국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내세웠던 마을이다.
시안에서 온 관광객 리모(64)씨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사람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충분하지 않았다”면서도 “온 나라에 활력이 넘쳤고, 중국의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하늘과 땅, 사람과 투쟁하는 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그립다”고 덧붙였다. 다자이에는 마오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와 트럼프 카드, 식기, 붉은 표지의 어록집 등을 파는 상점이 즐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마오 시대에 대한 향수와 달리 그의 통치가 남긴 어두운 역사를 현재 중국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949년 국민당에 맞선 공산혁명을 이끈 마오는 집단 소유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를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역사학자들은 그의 급진적인 정책이 대규모 기아와 죽음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중국 정부는 대기근 당시 약 1500만명이 사망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사망자를 약 2000만~43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마오가 1966년 시작해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에서는 지식인들이 ‘계급의 적’으로 몰려 탄압받고 학교가 문을 닫았다. 중국 공산당도 마오 사후 문화대혁명을 ‘중대한 과오’로 인정했고 이후 지도자들도 이 평가를 유지했다.
다만 당시의 참상에 대한 언급은 엄격하게 검열되고 있다. AFP가 찾은 한 박물관에서는 안내판에 적힌 문화대혁명 관련 문구가 거칠게 긁혀 지워져 있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아버지가 ‘우파’로 낙인찍혀 어린 나이에 박해를 받았던 학자 쉬청강은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당의 노선에 따른 것이다. 누구도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공산당은 사람들에게 과오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과오’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의 공식 서술에 어긋나는 역사 해석을 ‘역사허무주의’라고 경고하면서 공개적인 논의의 여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럼에도 마오의 얼굴은 지폐에 인쇄돼 있고 초상화는 톈안먼 광장에 걸려 있으며, 시신은 기념당에 보존돼 있다. 해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영화와 TV 프로그램도 나온다.
AFP는 이처럼 어두운 면을 지운 역사가 장시간 노동과 치열한 입시·취업 경쟁에 좌절한 청년들이 과거를 낭만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30세 미만 이용자들에게 인기 있는 동영상 플랫폼 비리비리에서 2017년 영화 ‘방화’를 문화대혁명을 은근히 찬미하는 작품으로 해석한 영상들이 확산했다. ‘방화’는 1970년대 군 문공단의 젊은 단원들을 다룬 영화다. 마오를 찬양하고 자본가 엘리트들이 문화대혁명을 짓눌렀다고 비난한 이 영상들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조회수 3500만회를 넘긴 뒤 삭제됐다.
최근 마오에 관한 책을 출간한 케리 브라운 런던 라우중국연구소장은 “문화대혁명을 돈과 물질을 끝없이 좇는 대신 이상에 의해 사회가 움직이던 이상주의의 시대로 여기는 인식이 더 커지고 있다”며 “물론 이는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반면 가오모보 애들레이드대 중국학 교수는 많은 사람이 중국이 현대적인 기술 선진국으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한 공로까지도 마오에게 돌린다고 설명했다. 마오 시대를 장시성 농촌에서 보낸 그는 “그들은 ‘오늘날의 중국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라고 묻는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을 실제로 세운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마오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