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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 잡역부의 아들은 어떻게 ‘260억 스타’가 됐나

시에라리온 이민자의 아들, 프랜시스 티아포
구멍 난 신발·버려진 라켓으로 테니스 시작
나달 꺾고 스타로…US오픈서 통산 세 번째 4강

미국 메릴랜드의 한 테니스 센터. 아침이면 운전기사가 모는 롤스로이스가 정문에 멈춰 섰다. 값비싼 브랜드로 차려입은 아이들이 뒷좌석에서 내려 코트로 향했다.

 

센터 한쪽 창고방에는 쌍둥이 형제가 살았다. 침대도 없었다. 방 안에는 마사지 테이블 두 개만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하나를 쓰고 어린 쌍둥이는 남은 테이블에 함께 누웠다. 아버지는 이 센터의 관리인이었다.

 

롤스로이스에서 내리던 아이들은 늘 같은 피카츄 티셔츠를 입고 구멍 난 신발을 신은 형제를 놀리곤 했다. 맨날 똑같은 셔츠를 입는다고, 신발 구멍으로 발가락이 나왔다고.

 

낮에는 그들이 코트를 채웠다. 밤이 되면 형제의 차례였다. 남들이 버리고 간 라켓을 들고 빈 코트에 들어가 벽에 공을 쳤고 어깨너머로 지켜본 선수들의 자세를 흉내 냈다.

 

미국 테니스 스타 프랜시스 티아포가 환호하고 있다. 티아포 SNS 캡처
미국 테니스 스타 프랜시스 티아포가 환호하고 있다. 티아포 SNS 캡처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마사지 테이블에서 잠들던 쌍둥이 중 한 명은 US오픈 4강에 섰다. 테니스로 벌어들인 상금만 약 1870만 달러(약 260억원). 그의 이름은 프랜시스 티아포다.

 

아프리카 이민자의 아들…운명을 바꾼 테니스 코트

 

아버지 콘스턴트 티아포와 어머니 알피나 카마라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다. 워싱턴 D.C. 교외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각 일용직과 간호사로 일했고 1998년 메릴랜드에서 쌍둥이 아들 프랜시스와 프랭클린을 낳았다.

 

이듬해 아버지는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에 들어서는 테니스 센터 건설 현장에서 일했고 완공된 뒤 그곳 관리인으로 취직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야근을 자처하면서 사무실 옆 창고방을 잠자리로 개조했다.

 

아버지가 일하는 동안 프랜시스는 코트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눈여겨본 사람이 센터 코치 미샤 쿠즈네초프였다.

 

그는 ESPN 계열 매체 앤드스케이프와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출근하면 걔가 있었고, 밤에 퇴근할 때도 걔가 있었다. 원하는 만큼 테니스를 가르칠 수 있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쿠즈네초프는 여덟 살 소년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열두 살 때 테니스 코트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티아포 SNS 캡처
열두 살 때 테니스 코트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티아포 SNS 캡처

 

그 무렵, 티아포는 코트 밖에서도 중요한 것을 배웠다. 어머니를 따라 처음 찾은 시에라리온에서였다. 일주일씩 전기가 끊기고 찬물로 씻어야 하는 곳에서도 거리에서 공을 차는 또래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아버지가 늘 하던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말이 그제야 마음에 박혔다.

 

열두 살 때 티아포는 부모에게 프로 테니스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는 반대했지만 그는 테니스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티아포는 열다섯 살에 세계적인 주니어 대회 오렌지볼에서 최연소 우승했고, 열일곱 살이던 2015년 프로로 전향했다. 아버지가 관리하던 코트에서 테니스를 배운 소년이 세계를 돌기 시작했다.

 

2022년 US오픈 남자 단식 16강에서 라파엘 나달을 상대하던 모습. 당시 나달을 3-1로 꺾으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AP뉴시스
2022년 US오픈 남자 단식 16강에서 라파엘 나달을 상대하던 모습. 당시 나달을 3-1로 꺾으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AP뉴시스

 

구멍 난 신발의 소년, 나달을 쓰러뜨리다

 

2018년 델레이비치 오픈에서 생애 첫 ATP 투어 우승을 거뒀고 이듬해 호주오픈에서 첫 메이저 8강에 올랐다.

 

그리고 2022년 9월, US오픈 16강. 상대는 라파엘 나달이었다. 그해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을 연달아 제패하며 그랜드슬램 22연승을 달리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그 벽 앞에 관리인의 아들이 섰다.

 

티아포는 물러서지 않았다. 세트스코어 3-1. 그가 전설을 넘어뜨렸다. 마지막 포인트가 끝난 순간, 티아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그해 티아포는 US오픈 4강까지 올랐다. 아프리카 이민자의 아들이 미국 남자 테니스의 새 얼굴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9일 US오픈 남자 단식 8강에서 알렉스 미컬슨을 3-2로 꺾은 뒤 환호하는 티아포. AP뉴시스
9일 US오픈 남자 단식 8강에서 알렉스 미컬슨을 3-2로 꺾은 뒤 환호하는 티아포. AP뉴시스

 

창고방에서 세 번째 US오픈 4강까지

 

지난 9일 티아포가 다시 뉴욕에서 살아남았다. 이번 US오픈 16강에선 2021년 챔피언 다닐 메드베데프를 눌렀고 8강에선 알렉스 미컬슨에게 먼저 두 세트를 내주고도 내리 세 세트를 따냈다. 4시간 39분 혈투 끝의 역전승이었다.

 

경기가 길어질수록 뉴욕 관중의 목소리는 커졌다.

 

“원, 투, 쓰리, 포(Foe).”

 

‘포(Foe)’는 티아포(Tiafoe)의 이름 끝을 숫자 ‘포(four)’에 빗댄 응원 구호다. 피카츄 티셔츠와 구멍 난 신발로 놀림받던 아이의 이름을, 이제 뉴욕 관중이 연호한다.

 

이번이 통산 세 번째 US오픈 4강이다. 2000년 이후 US오픈에서 세 차례 4강에 오른 미국 선수는 안드레 아가시와 티아포뿐이다.

 

미국 남자 테니스는 2003년 US오픈에서 앤디 로딕이 정상에 오른 뒤 메이저 우승자가 없다. 그 오랜 기다림을 끝낼 후보 중 하나가 티아포다. 정상까지 두 경기가 남았다. 13일 4강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카를로스 알카라스를 꺾은 벤 셸턴이다.

 

아버지 콘스턴트 티아포와 함께 찍은 사진. 티아포 SNS 캡처
아버지 콘스턴트 티아포와 함께 찍은 사진. 티아포 SNS 캡처

 

티아포는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남겼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나를 재능 있다고 하는 걸 싫어하셨다. 그건 노력이니까. 스스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거다.”

 

남의 코트를 관리하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것은 좋은 라켓도, 비싼 레슨도 아니었다. 코트에 설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