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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제5영역] AI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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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돈 드는 에이전트 AI, 국가·개인 격차 키워
기술 키우기보다 평등한 접근 구조부터 만들어야

어릴 때 영어 경진대회에 몇 번 나갔다.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준다는 1등 상품에 끌려서다. 하지만 1등은 늘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들 차지였다. 그때 깨달았다. 이 대회는 영어를 잘하는 아이를 골라 영어를 더 잘하라고 외국에 보내주는 구조구나. 나는 이길 수 없었다.

얼마 전 오픈AI가 ‘아스트라’를 내놓았다. 업계가 흥분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주가마저 아스트라 효과로 오른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말 몇 마디로 비디오게임을 뚝딱 만들고, 쇼핑을 대신하고, 3차원 설계를 진행하는 모습에 모두가 감탄했다. 이른바 ‘에이전트(대리인) AI’다. 에이전트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대학 연구실에서 ‘철수’ 에이전트에게 실험 결과를 기록하게 하고, ‘영희’ 에이전트에게 다른 기관의 최신 연구를 요약해 보고하라고 시킬 수 있다. 이 직원들은 24시간 잠도 없이 일한다. 언론이 ‘사무직의 종말’을 얘기하는 이유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AI 혁신은 이전의 기술 혁신들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개인용컴퓨터(PC) 시대를 연 스티브 잡스는 21세에 부모 집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고, 빌 게이츠는 19세에 대학 중퇴 후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웠다. 닷컴 시대의 구글은 20대 스탠퍼드 대학원생 둘이 기숙사에서 만들었고, 모바일 시대의 페이스북은 하버드 기숙사 방에서 19세 마크 저커버그가 시작했다. 애송이들의 무모한 시도였고, 그래서 낭만적이면서도 어딘가 공정해 보였다. AI 혁신은 다르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마흔을 넘겼고, 올트먼보다 한 살 많아진 저커버그도 AI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는 55세,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환갑이 지났다. 완숙한 사람들이 완숙한 자본을 들고 판을 짠다. 돈이 너무 들기 때문이다.

아스트라만 봐도 개당 5000만원짜리 GPU를 10만개 이상 학습에 썼다. 사용료가 쌀 리 없다. AI 회사들은 토큰(AI 사용량의 단위) 가격이 2년 전보다 수십분의 일로 떨어졌다 강조한다. 하지만 에이전트를 여럿 돌리면 사용량은 수천배로 뛴다. 2년 전 월 2, 3만원 요금제도 아까워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월 수십만원을 투덜대며 내고 있다. 요금은 더 오를 것이고, 쓸 수 있는 모델 제한은 더 심해질 것이다. 돈이 없는 개발자와 기업들은 이미 중국산 오픈소스 모델로 옮겨가고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격차를 키운다는 데 있다. 에이전트를 여러 대, 밤새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끝내고 그 결과로 더 많은 에이전트를 돌릴 돈을 번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어학연수를 가고, 계속 영어 대회에서 1등을 하는 구조와 같다. 이른바 ‘AI 디바이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낸 보고서 ‘AI와 아시아의 경제적 격차’는 이 격차가 국가 사이에서도 벌어진다고 경고를 보냈다. 준비된 나라가 먼저 AI에 투자하면 세계의 자본 수요가 늘어 금리가 오르고, 그 바람에 뒤처진 나라는 투자할 돈을 모으기가 더 어려워져 AI에 더 늦어진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주인공 성기훈은 이 게임을 계속하면 결국 다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두 번째 게임을 시작할 때 “나는 이 게임을 해 봤어요”라고 외친다. 하지만 게임은 바뀌지 않았다. 성기훈은 죽고, 가면 뒤 부자들은 헬기를 타고 섬을 떠난다. 성기훈은 이 게임을 겨우 두 번 해봤지만, 부자들은 수없이 해봤다. 그들에게 더 익숙한 게임이었다.

우리 앞의 AI가 이렇다. 나도 이 게임을 해봤다. 모두를 위한 PC, 세계를 평등하게 이어주는 닷컴, 누구나 손안에서 세상과 접속하는 모바일. 그 감언이설을 다 겪었다. 그래도 그땐 내 손에 PC와 인터넷, 스마트폰이라도 남았다. 이번에 보이는 미래는 전보다 어둡다. AI를 소유한 사람들은 우리 손에 청구서만 쥐여줄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스무 살 전후의 애송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금으로 AI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러분 모두 AI를 당장 써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잘 봐두자. 우리를 섬에 두고 자기들만 헬기에 오를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