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박물관에서 수백 년 전의 도자기를 마주하고, 여행지에서는 오래된 성당을 거닐며, 공연장에서는 수백 년 전 작곡가가 남긴 음악을 듣는다. 서로 전혀 다른 것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오랜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모든 것이 그렇게 시간을 건너온 것은 아니다. 수많은 물건과 건축물, 음악과 그림이 만들어졌지만, 그중 오늘날까지 전해져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오래됐다는 사실만으로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물건이라고 모두 귀한 것은 아니고, 오래된 건물이라고 모두 문화유산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수많은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 연주되는 것은 일부다. 대부분은 이름조차 남지 않았거나, 악보가 사라졌거나, 더 이상 연주되지 않는다. 오래된 것 가운데 살아남은 것에는 오래됐다는 사실과는 다른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바흐가 세상을 떠난 지 270년이 넘었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공연장에서 연주된다. 피아노로, 오르간으로, 오케스트라로, 때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편곡되어 다시 울린다. 18세기의 음악이 21세기의 연주자와 청중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시대도 악기도 연주 방식도 달라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바흐의 음악을 다시 꺼내 든다.
로마의 판테온도 비슷하다. 약 2000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 건축물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직접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돔과 그 중앙의 오큘러스가 만드는 독특한 공간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오래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직접 보고 경험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것 가운데 왜 어떤 것만 계속 선택되는 것일까. 오래 살아남은 것은 시간이 특별히 아껴준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다시 선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존했고, 누군가는 다시 연주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음 세대에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다시 선택될 이유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오래 살아남은 가치가 반드시 변하지 않는 가치일 필요도 없다. 시대가 달라지면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도 달라지고,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바흐의 음악은 18세기의 청중과 오늘날의 청중에게 똑같이 들리지 않는다. 판테온 역시 고대 로마인이 경험했던 공간과 지금 관광객이 경험하는 공간이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새로운 시대마다 사람들은 다시 그 음악을 듣고, 다시 그 건축물을 찾는다. 모습과 해석은 달라져도 다시 선택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오래 살아남은 가치가 가진 힘이다.
명품 브랜드가 클래식 음악과 예술을 후원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클래식 음악은 수백 년이 지나도 다시 연주되고, 새로운 세대의 청중에게 다시 받아들여진다. 일시적인 유행보다 오래 남는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을 때, 클래식 음악만큼 좋은 상징도 드물다. 오래된 것의 이미지를 빌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선택받는 가치와 자신들의 이름을 연결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도 결국 한 시대의 유행을 넘어 오래 기억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시간과 싸워 이겼다는 뜻이 아니다. 바흐의 음악이나 판테온이 특별한 것은 단순히 오래됐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시대를 지나면서도 사람들이 다시 선택할 이유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만드는 것들은 어떨까. 이들 가운데 무엇이 다음 세대에도 다시 선택될 수 있을까.
바흐의 음악과 판테온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이 수백 년 뒤에도 남을 것이라고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만들고, 그것을 잘 남기는 일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 빠르게 소비되고 곧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것들에 익숙해진 시대에,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보고 싶고 다시 듣고 싶은 것을 만들고 있을까. 오늘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 긴 시간을 건너 미래의 누군가에게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