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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랑스러운 해석의 중단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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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사랑에 빠진 커플이 이제까지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더 드라마’는 결혼식을 앞둔 엠마(젠데이아)와 찰리(로버트 패틴슨)의 관계를 통해 이 상상을 점점 키워 나간다. 예비 신랑 신부의 들러리를 맡은 친구 커플과 케이터링 메뉴를 고르는 자리에서 네 사람은 술에 취해 서로에게 최악의 비밀을 말하기로 한다. 친구들의 잘못은 작게는 거부감이 드는 일화에서 당혹스럽긴 해도 철부지 시절임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한 정도에 그친 듯 들린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엠마가 내뱉은 자기 고백은 동석한 친구의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찰리는 심각한 내적 갈등을 맞게 된다. 그 비밀은 어쩐지 이 사회의 도덕이나 윤리에 살을 맞댄 중대한 사안이라서 엠마의 행위를 사회가 요구하는 잣대로 분별력 있게 판단하는 일만이 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찰리의 고민은 ‘이대로 엠마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게 과연 현명할까’에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 그가 정말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해석의 문제에 있다. ‘인간의 뇌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난 이후의 인지는 그것을 알기 이전과 동일할 수 없다’는 인지과학의 통찰에 들어맞게도 찰리는 엠마를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다. 결혼식 연설문을 작성하며 친구 앞에서 자신이 엠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쉴 새 없이 떠들었던 찰리는 이제 원고에서 지금까지 이해한 엠마의 성격 정보(‘친절함’, ‘공감 능력’)를 지우는 동시에 약혼녀를 향한 해석을 대대적으로 수정한다. 회수된 정보는 겹겹이 쌓여 찰리의 새로운 해석(혹은 망상)을 거쳐 부풀어 오른다. 돌이켜보니 엠마가 사랑을 나눌 때 보인 행동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운전자에게 발휘하지 못한 관대함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위험 신호의 근거로 분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제만 해도 엠마는 여전히 그 어린 시절의 비밀을 간직한 동일한 사람이었는데 찰리에게 비밀 한 조각이 더해지자 전혀 다른 사람인 양 멀어져만 간다.

 

사실은 없고 오로지 해석만이 존재한다는 니체의 말은 찰리와 엠마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현상은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관점의 선택과 해석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애달픈 현실이 두 연인을 괴롭힌다. 엠마의 비밀은 지탄받아 마땅한 사회적 윤리와 정치적 틀에서 해석되고, 엠마를 이해해 보려 애쓰는 찰리는 엠마가 겪은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인과로 연결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이들은 지성을 가진 인간에게 무기이자 의무처럼 주어진 해석과 판단의 함정에 빠져 있다. 돌이킬 수 없는 해석/재해석의 굴레를 벗기는 것은 해석의 중단과 약간의 거짓말이다. 이성과 도덕의 관점에서 이 방식은 건강하지 못하다. 그러나 눈물과 불면으로 퀭한 얼굴의 두 연인이 서로를 향한 판결을 멈추고 둘 다 거짓말임을 알면서 농담쯤 건넨다고 해서 누가 그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선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