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기수가 하나가 돼 장애물을 넘는 승마 국가대표인 권만준(30·전남승마협회·사진)은 말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읽어내며 최상의 호흡을 만들어낸다. 선수 혼자의 기량이나 뛰어난 말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오랜 시간 말과 교감하며 기량을 다져온 그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사냥에 나선다.
권만준은 국내외 무대에서 경쟁력을 꾸준히 입증해 왔다. 2018년 세계 승마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데 이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U25(25세 이하) 국제대회에서 종합랭킹포인트 1위에 올랐다.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최근 4년간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따내며 꾸준한 성적을 냈다. 지난 5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개인 종합 1위를 기록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권만준은 10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말이 선수를 믿고 다시 장애물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선수의 역할”이라며 자신의 승마 철학을 밝혔다.
장애물 승마는 정해진 코스의 장애물을 말과 함께 뛰어넘으며 기량을 겨루는 종목이다. 장애물을 떨어뜨리거나 거부하면 벌점이 주어지고, 제한 시간을 넘기면 추가 감점이 발생한다. 기수는 코스와 시간을 계산하면서도 말의 상태에 맞춰 매 순간 판단해야 한다.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것은 말과 기수 사이의 신뢰다.
장애물 코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승부는 세밀한 계산의 연속이다. 장애물의 거리와 방향, 말의 보폭과 제한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어디에서 말의 균형을 만들고, 어디에서 리듬을 유지할지를 계속 생각한다”는 그는 “결국 중요한 건 속도보다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짚었다.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경기는 없다. 장애물 앞에서 말이 멈추는 ‘거부’가 나와도 무작정 다시 뛰게 하기보다 이유부터 찾는다. 장애물이 두려웠거나 자신의 신호가 잘못됐을 수도 있고, 말의 컨디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실패의 책임도 말에게 돌리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느냐’가 아니라 다음에는 어떻게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인가”라는 게 권만준의 원칙이다. 장애물을 떨어뜨린 뒤에도 “말이 실수했다고 하기보다, 내가 말에게 충분히 좋은 상황을 만들어 줬는지를 먼저 돌아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말의 기준은 단순히 높이 뛰고 빠르게 달리는 데 있지 않다. 그는 “능력과 마음을 함께 가진 말”을 꼽았다. 어려운 장애물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선수가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려는 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수 역시 말을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다. 손과 다리, 몸의 균형과 무게중심, 목소리까지 모든 움직임이 신호가 된다. “어떤 순간에는 말을 더 밀어줘야 하고,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제가 가만히 있어 줘야 합니다.”
권만준이 생각하는 좋은 선수는 말을 과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 스스로 가장 좋은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승마에는 현실적인 장벽도 있다. 좋은 말을 구하는 것부터 훈련과 관리, 이동, 국제대회 출전까지 상당한 비용이 든다. 권만준 역시 경제적 여건이 선수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좋은 말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훈련시키고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 장애물 승마가 한 단계 더 올라서려면 선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답은 ‘국제대회 경험’에 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말을 관리하고 훈련하는 방식, 코스를 준비하는 과정까지 직접 부딪치며 배워야 한다. 권만준은 “한국 선수들이 능력이 부족해서 국제무대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경험과 시스템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큰 무대가 주는 긴장감이다. “큰 대회일수록 긴장하게 되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작은 실수가 나올 수 있다.” 특정 장애물의 난도보다 첫 장애물부터 마지막까지 평소의 리듬을 유지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단체전에서도 개인 기록만 좇기보다 팀 전체의 결과를 놓고 안정성과 공격성을 판단하겠다는 각오다. “국가대표로 출전한다는 것은 혼자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이름으로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만준에게 실패는 지워야 할 과거가 아니다. 넘어지고 좋은 경기를 놓친 순간까지도 “그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되짚었다. 그가 바라는 마지막 장면은 기록이나 순위보다 마지막 장애물을 넘고 결승선을 통과한 뒤 스스로에게 ‘정말 후회 없이 탔다’고 말할 수 있는 경기다. “한국 선수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서 끝까지 경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