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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세계질서 맞서… 20세기 아시아는 어떤 미래 그렸나

유럽에서 아시아로/ 수가타 보스/ 이대희 옮김/ 에코리브르/ 2만7000원

 

하버드대 석좌교수인 인도 출신 역사학자가 유럽 중심의 세계 질서에 맞서 20세기 아시아인들이 어떤 미래를 그렸는지 추적한 역사서다. 저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독립’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아시아인들이 스스로 구상한 새로운 질서와 보편주의로 현대사를 정리하려 시도한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쑨원, 마하트마 간디, 수카르노 등 아시아 사상과 정치에 발자취를 남긴 인도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인도 지식인 베노이 쿠마르 사르카르는 이런 시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유럽·미국과 지적으로 교류하면서 아시아에 정서적 유대를 느낀 그는 러일전쟁의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만주로 향했다. 동양과 서양을 고정된 대립항으로 나누는 사고를 비판하고 아시아의 열세가 영원한 숙명은 아니라고 내다봤다.

수가타 보스/ 이대희 옮김/ 에코리브르/ 2만7000원
수가타 보스/ 이대희 옮김/ 에코리브르/ 2만7000원

책은 러일전쟁 이전부터 싹튼 연대의 구상을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과 탈식민화에 이르기까지 추적한다. 아시아주의는 이슬람·불교 보편주의와 볼셰비즘, 윌슨주의적 국제주의 등과 경쟁하고 겹쳤다. 책 속 아시아는 개별 민족국가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과 상품, 예술과 사상이 순환하고 연결되는 무대다. 조국에 대한 애정과 더 넓은 세계를 향한 보편주의도 양립할 수 있다고 본다. 유럽을 거치지 않고 이어진 아시아 내부의 교류를 복원한 것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 스스로 개인적 저서라고 밝혔지만 저자의 종조부인 인도 독립운동가 수바스 찬드라 보스와 그를 둘러싼 보스 가문의 활동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과 손잡고 인도국민군을 이끈 수바스의 행적을 아시아의 반식민 연대라는 큰 흐름에 놓고 조명한다. 일본의 역할을 설명하는 방식도 이와 맞닿아 있다. 책은 사르카르가 일본을 떠나며 남긴 세 가지 비판을 소개한다. 일본은 인도의 진정한 친구가 아니며 한국을 식민지화했고 유럽·미국과 함께 중국 침략을 공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사르카르가 이 제국주의를 중국 조차지에서의 서양 이권과 치외법권, 만주·몽고·티베트에서 서양이 누린 영향권이라는 맥락에 놓고 바라봤다는 서술이 뒤따른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이들이 방어에 성공한 이를 질투하는 것은 걸맞지 않다는 사르카르의 논리를 저자는 비판 없이 전한다. 한국 식민지화와 중국 침략을 비판하지만 일본 제국주의를 서구 압박에 대한 정당한 자기방어의 성공으로 재해석하는 논리를 나란히 실어놓은 이중적 서술이다. 일본의 군사적 팽창이 서구 식민 체제를 무너뜨린 효과를 강조하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독립 이후에도 국경과 주권을 둘러싼 갈등은 이어졌다. 중국과 인도의 반목과 종교적 다수주의는 아시아 내부에서 연대를 위협했다. 저자가 되살리려는 보편주의는 각 지역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더 넓은 연대와 대화를 추구하는 태도다. 타고르가 경계했듯 아시아가 힘을 얻고도 유럽의 폭력적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새로운 시대라 부르기 어렵다. 책은 아시아가 얼마나 강해졌는지와 함께 그 힘으로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