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가 재개된 지 4개월 만에 강남권 등 고가지역 중심으로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는 ‘매물 잠김’ 대신 ‘거래 잠김’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양도세 중과 시행 직후 6만건 초반까지 줄었던 매물은 다시 7만건을 넘어섰지만, 거래량은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특히 고가 주택이 밀집한 강남권을 중심으로 거래 위축이 두드러지고 있다. 세금 부담에 집을 내놓는 다주택자는 늘어난 반면, 매수자들은 대출 규제와 세제 불확실성에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양측의 힘겨루기가 길어지는 모습이다.
10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7만799건으로 집계됐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 직전인 지난 5월9일 6만8495건보다 2304건 늘었다. 중과 재개로 시장에서 매물이 줄어들 것이라는 당초 전망과 달리 현재 매물은 시행 전보다도 많아진 것이다.
시행 초기만 해도 시장의 우려가 현실화하는 듯했다. 지난 5월3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1441건으로 시행 전보다 7000건 넘게 감소했다. 6월30일에도 6만1039건에 그쳤고 7월31일도 6만1577건으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양도세 부담이 커진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며 ‘매물 잠김’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흐름이 바뀌었다. 지난 8월31일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6808건으로 한 달 새 5231건 늘었다. 이달 들어서도 9일 만에 3991건이 더 쌓이면서 매물 수가 7만건을 넘어섰다. 다만 강남권의 경우 늘어난 매물이 실제 거래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매물이 계속 나오고 호가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며 “가격이 떨어지다 보니 매수자들은 오히려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매수자들이 추가 가격 하락을 기대하면서 서둘러 계약하기보다 매도자에게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기다리는 분위기가 짙어졌다는 것이다. 개포동 B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집을 내놓은 집주인들이 ‘왜 이렇게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느냐’고 한다”며 “대출받기가 어려워져 현금 여력이 충분한 사람이 아니면 집을 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과 재개 이후 서울 주택시장에서는 고가 지역을 중심으로 ‘매물 잠김’보다 ‘거래 잠김’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8962건이었다. 6월에는 5289건으로 줄었고 7월에도 5800건에 그쳤다. 지난달 거래량은 이달 9일 기준 2776건으로, 5월의 31% 수준이었다. 다만 지난달 거래는 아직 신고가 덜 끝난 만큼 최종 거래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거래 위축의 강도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였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전체 아파트 거래에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5월 16.1%에서 8월 9.1%로 떨어져 연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대로 강남3구를 제외한 지역의 거래 비중은 90.9%까지 높아졌다. 서울 전체 거래가 감소하는 가운데서도 성북과 중랑 등 중저가 지역은 상대적으로 감소폭이 작았던 영향이다.
가격대별 거래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함 랩장 자료를 보면 8월 서울 아파트 거래 중 9억원 이하 비중은 54.3%로 지난 1월 47.1%보다 7.2%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3억원 초과~6억원 이하 거래 비중은 16.97%에서 21.32%로 늘어난 반면,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비중은 31.8%에서 26.6%로 줄었다.
세금과 금리 방향이 아직 뚜렷하지 않은 점도 매수자들의 관망세를 키우고 있다. 정부는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조정하는 등 실거주 중심의 세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가 최근 조세소위원회 구성을 마치면서 세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예정이지만, 주요 세제 개편안을 놓고 여야 간 입장 차도 커 최종안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랩장은 “세금 부담을 느낀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고는 있지만 싸게 내놓는 것은 아니다”며 “매물이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윤 랩장은 이어 “최근에는 강남권 일부가 주춤한 반면 서울 외곽과 경기 성남·광명 등으로 수요가 옮겨가고 있다”며 “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한 지역을 차선으로 선택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매수자 역시 급하게 움직일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당분간 실제 거래는 많지 않은 가운데 매도·매수자 모두 조건을 따져보며 관망하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