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호주 서부의 한 교도소. 수감자들이 지켜보던 TV 화면에 골프 선수 한 명이 등장했다. 호주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캐머런 스미스였다.
“저 선수 네 친구라며.”
한 수감자에게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호주 주니어 대표팀에서 함께 공을 치던 동료였다. 하지만 이제 둘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한 명은 프로 무대에서 우승컵을 들었고, 다른 한 명은 폭행죄로 5년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있었다.
수감자의 이름은 라이언 피크.
8년 뒤 두 사람은 다시 같은 무대에 섰다. 지난해 7월 북아일랜드 로열포트러시에서 열린 메이저대회 디오픈이었다.
골프 신동이 죄수가 되기까지
피크가 처음 골프채를 잡은 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라서였다. 주말마다 골프를 치던 두 사람에게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몇 번 스윙을 해보자 곧바로 재능이 드러났다. 열 살이 되기 전 자신의 골프채를 갖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몇 년 뒤에는 집 안 진열장을 트로피로 채웠다.
왼손잡이인 피크는 정교하게 계산하기보다 본능적으로 공을 치는 선수였다. 짧고 빠른 스윙에서도 놀라운 힘이 나왔고 압박이 커질수록 과감한 샷을 선택했다.
10대가 되자 호주 정상급 유망주로 성장했다. 열일곱 살이던 2010년에는 캐머런 스미스와 함께 호주 주니어 대표로 뛰었고, 같은 해 아마추어 신분으로 호주오픈에 출전했다.
그러나 화려한 성적 뒤에서 피크는 흔들리고 있었다. 또래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어 외로웠고 우울증과 싸웠다. 프로로 전향한 뒤에는 골프마저 즐겁지 않았다.
결국 채를 내려놓았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오토바이 갱단 ‘레벨스’였다.
그러다 2014년 모든 게 무너졌다. 한 남성을 크게 다치게 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한때 호주 골프의 미래로 불리던 유망주는 스물한 살에 죄수가 됐다.
감옥으로 찾아온 두 번째 기회
교도소에 들어간 뒤 한동안 골프채는 잡지 않았다. 프로골퍼는 더 이상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돌린 건 한 사람의 연락이었다. 한국계 골프 스타 이민지·이민우 남매 등을 지도한 리치 스미스 코치였다.
스미스 코치는 수감 중인 피크에게 다시 골프를 해보자고 했다. 아직 프로로 성공할 재능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골프로 돌아가려면 먼저 갱단과의 관계부터 정리해야 했다. 피크는 교도소 안에 있던 조직 수뇌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탈퇴하겠다는 말이 배신으로 받아들여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돌아온 건 악수와 포옹이었다. 골프를 다시 해보라는 격려도 받았다.
피크는 출소를 앞두고 다시 공을 치기 시작했다. 2019년 사회로 돌아온 뒤에는 골프장 관리 일을 하면서 작은 대회를 돌았다. 그렇게 조금씩 무대를 넓혀 호주프로골프투어까지 올라왔다.
세계 1215위가 연 메이저의 문
지난해 3월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열린 뉴질랜드오픈. 피크는 대회를 코앞에 두고서야 공항을 빠져나왔다. 전과 기록 때문에 입국 허가가 늦어졌다. 당시 세계랭킹은 1215위.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전화가 울렸다. 스미스 코치와 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이민우였다. 두 사람은 결과와 상관없이 그가 “이미 승자”라고 했다.
하지만 피크가 원하는 건 진짜 우승이었다.
선두에 뒤진 채 마지막 라운드에 나선 피크는 조금씩 격차를 좁혔다. 그리고 마지막 홀, 우승을 결정지을 파 퍼트 하나를 남겨뒀다.
공이 홀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두 팔이 번쩍 올라갔다. 1타 차 역전 우승. 감옥에서 프로의 꿈을 접었던 피크가 뉴질랜드오픈 정상에 선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메이저대회 디오픈 출전권이었다.
넉 달 뒤 북아일랜드 로열포트러시. 피크가 선 곳은 생애 첫 메이저 무대였다.
컷은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코스에는 15년 전 호주 주니어 대표팀에서 함께 뛰던 캐머런 스미스가 있었다. 한 사람은 이미 디오픈 챔피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감옥을 거쳐 그 자리에 닿았다.
피크는 자신의 과거를 두고 말했다.
“과거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그저 골프를 치러 나왔을 뿐이다.”
디오픈은 끝이 아니었다. 올해도 피크는 세계 각지의 투어를 돌며 프로골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