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아침 미국 뉴욕의 한 도로. 주(駐)유엔 대표부 2등서기관이던 김효은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출근길 승용차 라디오에서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WTC)와 충돌했다’는 뉴스를 처음으로 들었다. 훗날 펴낸 자전 에세이에서 김 전 대사는 “뭔 말인가 하는데 차창 너머 멀리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가 보였다”고 회상했다. 비행기가 부딪칠 때만 해도 CNN 방송 자막에는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under attack)’고 나왔다. 그런데 어느새 ‘미국은 전쟁 중이다(on war)’라는 섬뜩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그날 뉴욕 WTC 말고 수도 워싱턴 인근 전쟁부(옛 국방부) 청사를 겨냥해서도 비슷한 테러가 가해졌다. 2977명이 순식간에 숨지고 말았다.
미 정보 당국 등에서 ‘테러리스트들의 다음 표적은 유엔 본부일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마침 9월19일부터 유엔 아동특별총회가 열려 김대중(DJ)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이 대거 뉴욕에 모일 예정이었다. 유엔 총회 의장으로 내정돼 뉴욕에 머물고 있던 한승수 외교부 장관이 청와대에 유엔 총회의 무기한 연기를 알렸다. DJ는 뉴욕 방문은 물론 오래전에 예정된 중남미 순방 계획도 취소했다. 며칠 뒤 DJ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위로의 뜻을 전하며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필요한 모든 협력과 지원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시는 감사의 뜻을 표하며 “앞으로 ‘테러와의 전쟁’ 수행에 관해 협의하자”고 말했다.
사실 한국인 대다수는 2001년 9월12일자 조간신문을 통해 9·11 테러를 접했다. 주한미군 경계 태세도 최고 단계로 올라갔다. 당시 경기 평택 오산공군기지에서 복무하던 필자는 12일 아침 부대 출입문 앞에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을 잊지 못한다. 모든 자동차는 폭발물 감지기까지 동원해 10분가량 걸리는 수색을 받았다. 기지 바깥엔 경찰도 배치됐다. 미군 부대 외곽을 우리 경찰이 지키게 된 계기가 바로 9·11이다. 훗날 어느 경찰청장이 주한미군 사령관과 만난 자리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을 보호하는 한국 경찰이 가장 힘이 센 것 아니냐”고 말해 화제가 됐다.
9·11 참사 희생자 25주기를 맞아 서울 시내 중심가의 주한 미국 대사관에 성조기가 조기(弔旗)로 게양됐다. 한국계 미국인 미셸 스틸 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비극을 겪은 뒤에도 미국 국민은 언제나 하나로 굳게 뭉칠 것”이라며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도, 꺾이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테러 직후 부시와의 통화에서 DJ가 “미국 국민은 위기 때 더욱 일치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전통을 갖고 있다”며 “슬기롭게 재난을 극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덕담을 건넨 것과 일맥상통한다. 9·11 참사와 그에 따른 ‘테러와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모든 미국인들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