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롯데, KAIST에 100억 R&D 거점…자일리톨·칠성사이다 잇는 기술 찾는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KAIST와 손을 잡았다. 연구비만 지원하는 기존 산학협력을 넘어 기초 연구부터 실험, 시제품 제작, 기술사업화까지 한 공간에서 진행하는 R&D 거점을 만들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11일 대전 KAIST(카이스트) 본원에서 열린 롯데 x KAIST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했다. 롯데그룹 제공
신동빈 롯데 회장이 11일 대전 KAIST(카이스트) 본원에서 열린 롯데 x KAIST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했다. 롯데그룹 제공

롯데가 이미 자일리톨껌과 기능성 식품, 재생 페트병,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 등에서 연구개발 결과를 실제 제품과 사업으로 연결해온 만큼 이번에는 대학의 원천기술을 그룹 신사업으로 가져오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11일 대전 KAIST 본원에서 열린 ‘롯데 x KAIST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했다. 센터는 롯데가 지원한 건축 기부금 100억원과 KAIST 자체 기금으로 조성됐다.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 4298㎡ 규모다.

 

연구 분야는 크게 바이오 지속가능성, 탄소중립 에너지·소재·공정, 첨단식품·헬스케어 등 세 축이다. 시스템대사공학과 바이오연료·플라스틱, 그린수소, 신재생에너지, 배터리 등을 연구하며 전 과정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 연구실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험과 시제품 제작, 사업화까지 이어가는 구조다.

 

이번 센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연구 주제가 롯데 계열사의 기존 사업과 바로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바이오·첨단식품은 롯데웰푸드와 롯데중앙연구소, 재생 플라스틱과 수소·배터리 소재는 롯데케미칼 등 화학군과 연결할 수 있다. 롯데는 반도체 소재와 지속가능 에너지, 바이오·헬스케어 등 계열사별 전략 기술 연구도 KAIST와 함께 진행하고 확보한 기술을 그룹 사업과 연계할 계획이다.

 

이미 선행 사례도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KAIST와 탄소중립연구센터를 설립했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과 친환경 납사, 수소 저장·운송 기술 등을 공동 연구해왔다. 당시 롯데케미칼은 3년간 20억원을 투입하고 KAIST에 전용 연구공간과 실험 장비를 마련했다.

 

소비자가 직접 접하는 제품에서도 R&D 결과가 나오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가 개발한 ‘자일리톨 랩 워터링’은 기존 자일리톨껌에 구강 내 타액 분비를 촉진하는 기능을 더한 기능성 표시식품이다. ‘아임컨트롤 바나바’는 식후 혈당 상승 억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바나바잎추출물을 넣어 기능성을 강조했다. 연구소는 롯데웰푸드 초콜릿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카카오 껍질인 ‘카카오쉘’에서 항산화 성분을 추출해 식용유지의 산패를 늦추는 기술도 개발했다.

 

친환경 소재는 이미 음료병까지 들어왔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10월 재생 플라스틱 원료를 100% 사용한 칠성사이다 500㎖ 페트병을 출시했다. 2020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페트병 몸체에서 라벨을 없앤 ‘아이시스8.0 ECO’를 내놨고, 이후 초경량 생수병 개발 등으로 포장재 사용량을 줄여왔다.

 

롯데케미칼은 재활용 플라스틱과 바이오플라스틱을 묶은 친환경 소재 브랜드 ‘ECOSEED’를 운영하고 있다. PCR-PET·PCR-PC·PCR-ABS·PCR-PE·PCR-PP 등 소비 후 재활용 소재를 확보하고 자동차와 전자, 가전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새 R&D센터의 연구 결과가 당장 이들 제품에 적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핵심은 대학에서 나온 기술을 실제 제품과 소재로 연결할 수 있는 통로를 처음부터 한 공간에 구축했다는 데 있다.

 

산학협력을 미래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롯데만의 전략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서울대와 AI 공동연구센터를 세우고 온디바이스 AI와 멀티모달 AI 기술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협력 발표 당시 갤럭시 S24의 실시간 통역과 포토 어시스트, 서클 투 서치 등을 비롯해 비스포크 AI와 AI TV까지 AI 적용 제품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과의 공동 연구를 차세대 제품 경쟁력으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KAIST와 차세대 배터리 공동 연구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냈다. 양측 연구팀은 지난해 리튬메탈전지를 12분 만에 급속 충전하면서 1회 충전 800㎞ 이상, 누적 주행거리 30만㎞ 수준의 성능을 목표로 한 기술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했다. 4년간 공동 연구한 결과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서울대와의 산학협력센터도 화학·화학생물공학·기계공학 등 3개 학부로 확대하고 공동 과제를 기존 9개에서 13개로 늘렸다.

 

SK하이닉스 역시 KAIST와 반도체 제조 데이터를 활용한 AI 공동 연구 체계를 구축했다. SK하이닉스가 실제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제공하면 KAIST가 AI로 분석해 반도체 품질 예측과 개선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연구용 데이터와 실제 산업 현장의 거리를 좁힌 사례다.

 

결국 대기업 산학협력의 무게중심이 단순한 장학금 지원이나 인재 확보에서 실제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내는 공동 R&D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