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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베니스 귀환… “타인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고 싶었다” [뉴스 투데이]

이창동,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해고노동자 찍는 다큐감독 이야기
10년전 ‘정리해고 사태’ 작품 출발
李 “파업 강제 진압 장면 충격적”
수차례 제작·중단 반복하다 탄생

영화 인생 30년… 장편은 단 7편
매 작품 국내외 수상 ‘뚜렷한 흔적’

“타인의 고통을 영화는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

이창동(72) 감독은 12일(현지시간)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타인의 고통’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영화에 담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며 “영화 만드는 작업 자체를 통해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이 12일(현지시간)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24년 만에 베니스영화제 중심에 다시 섰다. 이 감독이 시상식에서 은사자상 트로피를 손에 쥔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창동 감독이 12일(현지시간)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24년 만에 베니스영화제 중심에 다시 섰다. 이 감독이 시상식에서 은사자상 트로피를 손에 쥔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와 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을 겹쳐 놓으며,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고 소비하는 행위의 윤리를 묻는다. 인간의 고통을 꾸준히 응시해 온 이창동 영화가 기록자의 윤리를 스스로에게 돌려보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감독은 10여년 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기업 정리해고 사태에서 이 작품의 출발점을 찾았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그는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이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충격이 있었고 나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는 “특정 기업의 사건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곧장 영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 감독은 10년 전 해고 노동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프리프로덕션을 진행했지만 결국 몇 번이나 제작을 중단했다. “이 이야기를 지금 극영화로 만드는 것이 관객에게 의미가 있는가,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광의 얼굴들… “그라치에” 이창동 감독(왼쪽부터), 배우 설경구·전도연·조여정·조인성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 살라 그란데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영화 ‘가능한 사랑’ 공식 상영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네치아=EPA연합뉴스
영광의 얼굴들… “그라치에” 이창동 감독(왼쪽부터), 배우 설경구·전도연·조여정·조인성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 살라 그란데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영화 ‘가능한 사랑’ 공식 상영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네치아=EPA연합뉴스

그가 손꼽히는 과작 감독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7년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그는 영화 인생 30년을 앞두고 있지만 장편 영화를 단 7편 만들었다. 노무현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1년4개월여를 제외하더라도 극히 적은 편수다. 전작 ‘버닝’(2018)과 ‘가능한 사랑’ 사이에 8년, 그 전작 ‘시’(2010)와 ‘버닝’ 사이에도 8년의 공백이 있었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그 영화가 나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고, 관객에게도 의미가 있고, 영화 자체로도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에 대한 기대치와 기준이 누구보다 엄격한 셈이다.

과작이지만 작품마다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자기 반복도 없다. 데뷔작 ‘초록물고기’는 개발 논리 속에서 파괴되는 개인의 삶을 그렸고, ‘박하사탕’(2000)은 국가 폭력에 짓밟힌 인간의 존엄을 되짚었다. ‘오아시스’(2002)는 장애인 여성과 전과자의 사랑을 통해 사회적 소외를 응시했고, ‘밀양’(2017)은 상실과 용서, 신앙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시’(2010)는 아름다움과 윤리를, ‘버닝’은 계급 격차와 청년 세대의 불안을 탐색했다.

2002년 베니스영화제 수상 이후 귀국 기자회견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2002년 베니스영화제 수상 이후 귀국 기자회견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성취 역시 압도적이다. ‘오아시스’로 2002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밀양’은 전도연에게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시’는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이번 ‘가능한 사랑’으로 다시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영화계를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 위상을 재확인했다.

‘가능한 사랑’을 두고 해외 평단에서는 “소설적”이라는 평가가 유독 많이 나왔다. 소설가로 출발한 이력을 떠올리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1954년 대구 출신인 그는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교사로 일하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 활동했고, 1993년 불혹을 앞두고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각본과 조연출을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가능한 사랑’은 23일 국내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이 감독은 1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한 메시지에서 한국 관객들을 향해 “처음으로 여기(베니스)에서 관객을 만났는데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얼마나 많은 관객과 만나 얼마만큼 서로 소통하고 영화에서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관객과 공유하고 서로 공감하게 될지 굉장히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