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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드는 ‘경기도 무용론’… 예산 반발 어디까지 [오상도의 경기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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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비 중단 논란… 추미애 지사 “중단은 불가피한 선택, 애초 불완전 예산”
11일에는 “사퇴하라” 청원 글 등장… 사흘 만에 참여 인원 6000명 훌쩍 넘겨
곳곳에서 예산 파열음… 내년 도비 매칭 상한선 30%로 낮춰, 421개 사업 위기
“예산 줄이고 책임 전가하나”… ‘도비 감축’에 31개 시·군 매서운 반발 이어가
‘유랑(流浪)’은 정처 없이 헤매는 발걸음이 아닙니다. 땅이 전하는 언어를 들으려 걸음을 늦추는 일이자, 사람과 공간이 나누는 다정한 대화입니다. 타성에서 벗어나 경기도라는 넓은 지도 위를 천천히 음미하며 거니는 기록입니다. 길 위에서 건져 올린 고요한 울림과 예리한 시선이 여러분의 일상에도 작은 여유와 깊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경기도에서) 앞으로 예산을 30%만 주겠다고 해서 우리도 상응하는 30%만 집행하겠다고 했어요.”

 

이달 중순 집무실에서 마주한 도내 한 시·군 단체장은 격앙돼 있었다. 도가 재정난을 이유로 ‘매칭 예산’ 삭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관할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경기도 광교 청사.
경기도 광교 청사.

일각에선 추미애 경기지사의 재정 비상 선포에 이은 도비 지원 상한 설정이 단순히 예산을 아끼는 수준에 머물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의 도지사 재임 시절(민선 7기) 이후 구축된 ‘현금·보편 복지’ 청구서와 절연을 뜻한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여기에는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지역화폐 발행지원’ 등 그동안 도와 31개 시·군이 통상 7대 3부터 5 대 5까지 예산을 분담했던 다양한 사업들이 포함된다. 

 

광역지자체라는 버팀목이 사라지면, 기본소득은 일부 시·군의 선택적 자체 사업으로 격하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추미애 “난임 지원 살린 것”…사퇴 청원까지 등장

추미애 경기지사. 연합뉴스
추미애 경기지사. 연합뉴스

‘한 번 줬던 복지 혜택은 거두기 어렵다’는 행정 격언처럼 도민들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그만큼 매달 혹은 매년 뿌려온 복지예산을 되돌리는 건, 흐르는 물을 역류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다.

 

도내 산후조리비 지원사업 종료에 대한 도민 반발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지사 시절 도는 출산가정의 경제부담 완화와 산모·신생아 건강 보호를 위해 도내 출산가정에 지역화폐 지원을 시작했다. 올해 기준 출생아 1인당 50만원 규모다.

 

이 사업의 급작스러운 종료 결정에 도민들은 ‘경기도청원’ 누리집을 통해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지난 9일 올라온 반대 청원의 참여 인원은 1만7900여명(14일 오후 2시 기준) 수준이다. 하루 만에 1만명 넘게 폭증하며 이목을 끌었다.

 

이어 11일에는 같은 게시판에 추 지사 사퇴를 요구하는 청원 글이 등장했다. 작성자는 재정 비상 선언에 이은 세출 구조조정과 공무원 인센티브 삭감, 보증금 12억원대 아파트 관사 거주 등을 나열한 뒤 “무리한 예산 삭감의 부작용이 하나둘 드러나 도민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게시 글은 동의자가 6100명(14일 오후 2시 기준)까지 불어난 상태다. 1만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하면 도지사는 공식 답변을 해야 한다. 

 

결국, 추 지사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해 예산은 애초부터 9개월 치만 편성돼 있었고 석 달 치 공백을 메울 돈이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아이들 급식과 장애인·취약계층 지원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 집행부에서 수차례 논의를 거듭했다”며 산후조리비 지원 중단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산후조리비 지원 중단을 설명하는 추미애 경기지사의 글. 페이스북 캡처
산후조리비 지원 중단을 설명하는 추미애 경기지사의 글. 페이스북 캡처

이어 “산후조리비처럼 그나마 국비가 지급되는 사업은 도비를 추가하는 것보다 당초 예산대로라면 9월이면 끝날 상황인 난임 부부 시술비를 지원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집행부 건의를 받아들였다”며 “지금 도 재정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도지사로서 재정을 정상화할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비 30% 상한…도의회 與野 “민생·복지 후퇴 우려”

경기도의회 임시회.
경기도의회 임시회.

다시 시·군 매칭 예산으로 돌아가 보자. 도가 재정 악화를 이유로 내년도 시·군 보조사업의 도비 지원 비율을 최대 30%로 제한하겠다고 통보하자 도내 31개 시·군의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기초지자체들이 공동대응에 나선 가운데, 일각에선 ‘광역지자체 무용론’까지 제기하며 행정체제 개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앞서 도는 지난 3일 시·군 부단체장 회의를 열고 2027년도 본예산 편성 과정에서 시·군 보조사업의 도비 보조율을 최대 30%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이 방침이 적용될 경우 전체 시·군 보조사업 961개 중 43.8%에 달하는 421개 사업이 타격을 받는다. 특히 성남·화성·용인 등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는 도비 부담률이 10%까지 떨어져 사업비의 90%를 짊어져야 한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시·군들은 더 큰 고민을 떠안고 있다. 어차피 도비 부담률이 낮았던 우량 시·군과 달리 도비 지원이 줄면 아예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 

 

이번 조치는 지난 8월 추 지사가 선언한 재정 비상 선언의 후속 조치다. 도 전체 예산은 41조7000억원에 달하지만 의무 경비 등을 제외하면 도가 자체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3조5000억원에 불과한 탓이다.

 

다만 지방채 발행 한도마저 소진된 상태에서 도가 마련한 예산 절감안은, 그 부담을 일선 시·군으로 전가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당장 도민 삶과 직결된 복지·민생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하남시의 경우 도비와 시비를 5 대 5로 매칭하던 ‘농어민기회소득’의 도비 분담률이 10%로 낮아질 위기에 놓였다. 경기도의회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시·군마다 재정 여건이 다른데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면 복지 사업 포기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신상진 “이번 기회에 경기도를 없애는 건 어떨까”

 

갈등이 격화하자 신상진 성남시장은 광역단체 자체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던지며 직격탄을 날렸다. 성남시의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53.7%였다.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1위다. 

 

신 시장은 “2025년 기준 도세와 시·군세는 50 대 50으로 비슷한데, 주민 생활 행정을 담당하는 시·군에 비용과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며 “이럴 바에야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도(道)’라는 중간 행정 단계를 없애는 편이 낫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 행정체계를 중앙정부와 권역별로 통합한 50여개 기초지자체 중심으로 단순화해야 한다는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 같은 주장은 민선 8기부터 일부 국민의힘 기초단체장들을 중심으로 제안돼온 만큼 향후 적잖은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9일 경기도청 기자회견에서 정두석 도 기획조정실장이 올해 두 번째 추경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지난달 19일 경기도청 기자회견에서 정두석 도 기획조정실장이 올해 두 번째 추경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경기도는 연천·동두천 등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는 차등 보조율을 적용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기초지자체들은 “사업이 중단될 경우 모든 민원과 정치적 책임은 시·군이 떠안게 된다”며 반발을 거두지 않고 있다.

 

도비 매칭 비율 축소를 둘러싼 예산 갈등이 시·군과의 정면충돌은 물론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로까지 확산하며 커다란 진통을 예고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