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축구공에 맞거나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우려에 더해 교사가 학생을 지도했다가 아동학대 신고나 고소·고발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학교체육을 비롯한 교육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운동장 사용과 현장 체험학습을 둘러싼 교육 현장의 문제를 놓고 교원단체와 판사가 한자리에 앉았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과 같은 당 이주영 의원은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선생님과 판사와의 대화-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육활동을 지키기 위한 간담회’를 공동 개최했다. 교사의 고소·고발과 아동학대 판단 과정에서 교육활동의 특수성을 어떻게 반영할지를 놓고 현장과 사법부가 의견을 주고받았다.
천 의원이 이 문제를 공론화한 계기는 학교 운동장과 체험학습이었다. 천 의원은 지난 4월 대정부질문에서 사고 책임과 악성 민원에 대한 부담으로 교육·놀이 활동이 위축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의원실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등학교 6189곳 가운데 312곳에서 축구·야구 등 스포츠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 의원은 지난 5월 교육·놀이 활동에서 발생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소음 규제와 경범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도 발의했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입법을 넘어 실제 사법 판단에서 교육활동의 특수성을 어떻게 고려할 수 있을지가 논의됐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문중흠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운영지원단장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활동과 아동학대의 경계를 법원의 시각에서 설명했다. 2000년 이후 초·중등교육법령과 판례의 변화를 교육 목적 강조기, 아동복지 보장 강조기, 양자의 조화기로 나눠 살펴보고 대법원이 제시한 ‘객관적 타당성’ 기준을 중심으로 정당한 교육활동의 범위를 짚었다. 김민철 부장판사도 토론에 참여했다.
문 부장판사는 특히 현행 아동학대 범죄 양형기준이 아동복지 보장이 강조됐던 시기의 법령과 판례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짚고, ‘참작할 만한 범행동기’ 정의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교육적 목적에서 이뤄진 행위가 사법 절차에서 어떻게 평가돼야 하는지를 양형기준 차원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다.
교원단체들은 현장에서 체감하는 법적 불확실성과 소송 부담을 제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강주호 회장은 교육활동 침해 심의 건수가 2019년 2662건에서 2024년 4234건으로 늘어난 실태를 제시하며 정서적 학대 판단기준을 구체화하고 시·도교육청이 사건 종료 때까지 교사의 법률 상담과 소송 대리를 책임지는 ‘교육활동 소송 국가책임제’ 도입을 요구했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교육감의 의무고발 제도도 제안했다.
강석조 초등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민원 대응 과정에서 교사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전국 초등교사 98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민원 대응팀이 구성된 학교의 71.5%가 교사를 팀원으로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다음 달 29일 시행되는 초·중등교육법 제37조와 관련해 시행령·시행규칙에 ‘교사 배제 원칙’을 명문화하고 민원 창구 단일화와 반복적인 악성 민원에 대한 기관 차원의 제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초등교사협회 김학희 회장은 생활지도의 경계가 불명확하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초등교사 85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조사에서 응답자 전원이 아동학대 신고나 민원이 우려돼 필요하다고 판단한 생활지도를 주저하거나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현행 법령만으로 자신의 교육활동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를 사전에 판단할 수 있다고 답한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교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행위 역시 체벌이 아니라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훈계’로 78.8%가 꼽았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교사는 어디까지 가르쳐야 합니까?”라고 사법부에 공개적으로 질문했다. 교육적 훈육과 아동학대 사이의 경계가 현장 교사에게 예측 가능한 기준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간담회에서는 교육 현장의 요구를 사법 판단과 양형기준에 반영할 방안을 놓고 참석자들의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천 의원과 이 의원은 이날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공청회·심포지엄 의제화와 양형기준 개정 논의 등 후속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천 의원은 “아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아니며, 선생님이 소송을 두려워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학교를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아이들에게 운동장과 체험학습을 돌려주려면 교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원단체와 사법부가 같은 자리에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첫걸음”이라며 “현장의 목소리가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지금 교실에서는 정당한 지도와 교육활동에 대해 선생님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가르치는 현장과 판단하는 법원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때 비로소 현장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