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시작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박자를 탄다. 한 치의 망설임도 허용되지 않는 1대1 승부이지만, 결국 무대 위에서 보여줘야 하는 것은 남과 다른 ‘나’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26·원밀리언)가 8년 만에 아시안게임 무대에 올라 첫 포디움에 도전한다.
김예리가 걸어온 길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성인 무대에서 도약을 준비하던 2022년 큰 부상으로 멈춰 섰고, 이듬해에는 개인적인 악재까지 겹쳤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조차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김예리는 14일 세계일보와 만나 당시를 담담히 돌아봤다. 그때의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아쉬움보다 칭찬이다. 그는 “춤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때의 저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춤을 바라보는 방식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더 높은 기술과 완성도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무대에서 어떤 선수로 기억될지를 고민한다. 김예리는 “보여지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저만의 색깔과 방향성을 어떻게 가꿔 갈지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커졌다”고 털어놨다. 그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은 첫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이었다. 김예리는 당시를 “기쁜 감정보다는 억눌려 있던 감정이 한 번에 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브레이킹은 남녀 개인전으로 치러진다. 선수들은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움직이며 1대1 배틀을 벌인다. 풋워크와 파워무브, 프리즈 같은 기술에 음악성과 창의성, 표현력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내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김예리는 “제 춤을 잘 만들고, 제가 가진 것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메달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들어서는 저만의 스타일을 더 짙게 구축하고, 다른 선수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색깔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강점으로 꼽은 음악성과 표현력에 대해서는 “브레이킹의 정해진 틀에만 갇히기보다 음악성과 제가 표현하고 싶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의 경쟁을 넘어 브레이킹이라는 종목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이 분명했다. 브레이킹은 2024 파리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데뷔했지만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는 제외됐다.
김예리에게 올림픽은 춤의 출발점도, 지속할 이유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브레이킹의 철학은 ‘선수처럼 트레이닝하고, 아티스트처럼 춤춰라’이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몸을 만들되 무대에서는 음악과 움직임의 자유를 잃지 않겠다는 뜻이다.
한국 비걸의 현실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여성 선수층이 남성보다 얇은 데다 어린 나이에 시작할수록 유리한 종목 특성까지 고려하면 유소년 선수를 일찍 발굴해 체계적으로 키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비걸의 경쟁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김예리는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경쟁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업팀과 기업팀, 스폰서십 등 안정적인 지원과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저희 세대가 받지 못했던 지원과 교육을 다음 세대 선수들이 더 일찍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더 큰 무대에는 2032년 올림픽도 있다. “2032년 올림픽에 브레이킹이 다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그때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제 몸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끝까지 노력해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