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공지능(AI) 업계에서 촉발된 AI 속도조절론이 정치적 이슈로 확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I를 중국과의 패권 경쟁의 핵심요소로 인식하면서 “규제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맞춰 사이버안보 조직에 대한 대대적 개편에도 나섰다. 미국의 움직임에 중국이 반발하며 AI 규제 관련 논의가 미·중 갈등 확대로까지 이어지는 흐름이다.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제기되고 있는 AI 속도조절론과 관련해 “AI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한 나라”라며 “솔직히 말해 AI(경쟁)에서 이기는 쪽이 승리하기 때문에 나는 이 방식을 유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안전장치를 둘 수 있다. 우리는 이것저것 할 수 있다”면서도 “내 생각에 부각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부각하는 부정적 세력이 너무 많다. 그들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부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앤트로픽, 구글 연구원들이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의 종말을 이끌 수 있다고 연이어 경고하고,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 등 AI 업계 수장들도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지난 10일 비공개 민주당 행사에서 “AI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며 민주당이 주요 정치 의제로 삼을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경고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경쟁에 AI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규제를 최소화하는 현 AI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중국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AI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규제에 먼저 나설 경우 민간 AI 기술 발전은 물론 국가안보에도 심대한 타격을 자초할 수 있다는 인식을 지속해서 드러내 왔다.
AI 관련 의제는 이달 24일로 다가온 워싱턴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양국은 이미 AI가 갖는 중요성을 고려해 정상회담 이전 별도 고위급 회담을 갖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연일 ‘중국과의 AI 경쟁’을 강조한 것을 미루어 볼 때 미·중이 협력해 규제의 틀을 만들어 달라는 국제적 요구와 달리 회담에서 의미 있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AI 경쟁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사이버안보를 총괄하는 국방부(전쟁부) 산하 국가안보국(NSA)에 대한 조직개편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가 전현직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개편안은 AI, 중국, 사이버 보안, 전투지원 또는 전쟁 수행, 글로벌 정보 등 5개 조직을 신설하는 것이 골자다. 군사·안보 역량까지 총동원해 중국과 AI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중국 역시 이런 미국의 움직임에 경계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AI 발전을 겨냥한 봉쇄 시도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모데이 CEO가 AI 속도조절을 주장하며 중국의 AI 발전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제재할 필요성을 강조한 데 대해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14일 “적대적이고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문은 이런 논의가 “AI 안보 문제를 주요 강국 간 협력 과제가 아닌 지정학적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면서 아모데이 CEO의 주장이 “중국의 오픈소스 AI 추격을 늦추고 자사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는 상업적 목적”이라는 전문가 견해도 함께 전했다.
중국은 미국의 AI 통제 강화 흐름에 맞서 속도 억제보다 개방과 확산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3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8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연설에서 “중국은 브릭스 AI 오픈소스 공동체 구축을 선도하고, 대규모언어모델(LLM)의 개발·응용 협력을 지원하며, AI 전문 세미나와 연수 과정을 열어 개방형 AI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