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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이 제 배구관, 인생관을 바꿔놓았죠. 건재함 알리고 차차기 시즌을 마치면 은퇴할까 싶어요”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임명옥 인터뷰②]

[용인=남정훈 기자]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부상이지만, 선수 생활하면서 처음 크게 다쳐본 이번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은 임명옥의 배구관, 그리고 인생관도 바꿔놓았다. 그리고 수술 후 한 달은 임명옥의 생애 전체를 꼽아도 가장 행복했던 한 달이었단다. 어쩌면 전화위복이란 말이 이럴 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한 달 동안 오른발에 깁스를 해야했어요. 그렇다 보니 샤워도 제대로 못 하던 저에게 오빠(남편)가 제 오른발이 되어줬어요.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해줬죠. 한 달이 지나고 깁스를 풀고 재활하러 숙소에 들어오던 날, 그날 저녁에 오빠가 몸살이 났대요. 그만큼 저를 보살피느라 힘들었나봐요. 긴장도 풀리고...제 반려견 ‘베로’도 평소엔 절대 저희 부부랑 안 자는 앤데, 제가 깁스했을 땐 새벽에 제 곁으로 와서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옆에 있어주더라고요. 강아지인데도 뭔가 알았나봐요. 엄마가 위로가 필요하다는걸. 그래서 수술 뒤 한 달 동안 참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제일 행복했던 한 달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달까요”

 

자타공인 ‘최리’(최고의 리베로)인 임명옥이지만, 수술 후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리시브의 달인이지만, 디그도 리베로 중에서도 최고 수준인 임명옥은 곧 있을 KOVO컵과 이어질 V리그 초반엔 리시브 상황에서만 코트에서 뛸 예정이다. “마나베 감독님께서 처음엔 리시브만 받고, 디그 상황 땐 다른 후배들을 뛰게하면서 천천히 출전 시간과 비중을 늘려가자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지금 몸 상태로 뛰어도 후배들보다는 리시브나 디그 둘 다 더 잘할 자신은 있거든요. 그래도 감독님이 원하는대로, 저의 체력 관리를 위해서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모든 건 팀을 위해서니까요”

 

‘최리’에겐 더블 리베로 시스템은 자존심이 상할 법하다. 그러나 그가 멘토로 삼는 친언니의 조언에 자존심과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이제는 욕심을 좀 덜 부리고, 자존심을 전혀 상해할 필요가 없다고. 이제는 좀 내려놓고, 현역 마지막을 즐기자고”

 

그럼에도 몸 상태가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자 예전의 욕심과 투쟁심이 슬금슬금 살아나고 있다.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팀 훈련에도 거의 정상적으로 참여하면서 점점 욕심이 생기긴 해요. 지난 번에 GS칼텍스랑 연습 경기에서 리시브만 하는데 너무 재밌고 행복하더라고요. 근데 디그 땐 후배들이 뛰는걸 웜업존에서 바라보는 데 아쉽기도 했어요. 제가 코트 위에서 리시브랑 디그만 하는 게 아니라 방향 지시나 다양한 역할을 하는데, 디그 상황 땐 그걸 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후배들이 안 보이는 게 제겐 보이는 게 있으니까요. 그럴 때 빨리 리시브-디그 모두 제가 뛰어야겠다라는 욕심이 생기긴 해요”

 

인터뷰가 무르익자 내년 목표를 물었다. ‘챔프전 우승과 베스트7 리베로 탈환을 잡으면 되는 것인가?’ 이에 임명옥은 “이제 기록은 정말 1도 신경쓰지 말자고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리시브 효율 50% 아래로 떨어지면 싫은텐데?’라고 반문하자 “아, 그럼 개빡치지”라며 웃었다.

 

베스트7 리베로는 임명옥에겐 ‘훈장’이었다. 2019~2020시즌부터 2024~2025시즌까지 6년 연속 베스트7 리베로는 임명옥이 독식했다. 현역 최고 리베로라는 자부심을 지켜주는 징표나 다름없었다.

 

다만 지난 시즌엔 임명옥이 IBK기업은행으로 떠나면서 무주공산이 된 도로공사의 주전 리베로 자리를 꿰찬 문정원이 무섭게 치고올라왔고, 둘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최고의 리베로 자리를 다퉜다. 그러던 중 임명옥이 시즌 아웃 부상을 당했고, 문정원은 리베로 전향 첫 해에 베스트7 리베로 부문을 수상했다.

 

“7시즌 연속 수상, 이런 것에 너무 연연했던 것 같아요. 다쳤을 때도 ‘아, 안 다쳤으면 7년 연속도 가능했을텐데...’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때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베스트7 리베로가 명옥이, 네 것이냐’고. ‘6년 연속도 네 것이 아닌데, 운이 따라줬기에 받은 것이다. 그 상을 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 어떤 누구 것도 아니고, 실력에 운이 따라줘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요.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들더라고요. 이젠 진짜 연연해하지 않으려고요”

 

‘쉼표를 한 번 찍었으니 다시 한 번 6년 연속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던 와중, 임명옥이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렸다. “다가올 차기 시즌에 잘 복귀해서 건재함을 보여주고, 차차기 시즌까지 뛰면 FA 자격을 얻기 위한 3년을 채우거든요? 그때는 선수 생활을 그만할까 해요. 이제 목표는 그거에요”

 

몸 상태가 허락하는 한, 계속 뛸 것 같았던 임명옥의 은퇴 예고에 ‘FA 자격 얻고 다른 팀에서 모셔가면 또 할 거면서?’라고 하자 “아니에요. 지금은 진짜 많이 내려놨어요. 지금 배구가 너무 재밌는데, 딱 내년까지만 하자는 게 지금의 마음이에요. 그리고 은퇴 후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 에필로그

 

부상 이후 배구관이나 삶의 태도가 바뀐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이번 재계약이었다. 도로공사에서 쫓기는 사인 앤드 트레이드되어 온 임명옥은 지난 시즌 활약도에 비해 헐값이나 다름 없는 1억5000만원(연봉 1억, 옵션 5000만원)에 사인을 해야했다. 부상으로 인해 시즌아웃되긴 했지만, 부상 전까진 최고의 활약을 보였고, 부상 회복 후 최고 수준의 기량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던 만큼 임명옥은 이번 재계약 과정에서 꽤 금액을 부를 요량이었다.

 

IBK기업은행 사무국이 제시한 금액은 5000만원 오른 2억원(연봉 1억5000만원, 옵션 5000만원)이었다. 인상 금액은 5000만원이었지만, 사무국장과 홍보차장은 임명옥이 재활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가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감사했다. “국장님과 차장님이 옵션이 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다 가져갈 수 있게 해주겠다. 복귀 못할 것이란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지만, 설사 복귀를 하지 못해도 2억원을 모두 보장해주겠다. 임명옥이란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우리에게 보여줬고, 휴가 기간에도 숙소에서 재활하는 모습을 후배들도 보며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해주는 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원래는 더 달라고 하려 했는데, 그 말에 너무 감사하고, 감동했거든요. 그래서 주저 없이 사인했죠. 지금까지는 프로 선수는 연봉이 자부심이자 명예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돈이 다가 아닌 것을 알게 됐어요. 이제는 제가 팀을 위해 뛰는 게 감사함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다가올 시즌, 정말 열심히 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