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기념사와 장기근속자 포상이 중심이던 기업 창립기념일이 달라지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와 직원들이 음식을 나눠 먹고 DJ 공연을 즐기는가 하면 수십 년 전 제품을 다시 출시해 소비자를 행사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업도 등장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창립기념일을 단순한 사내 행사가 아니라 조직문화를 다지고 브랜드 역사를 소비자에게 다시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14일 서울 명동사옥에서 김정수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65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1961년 출범한 삼양식품은 올해 명동사옥에서 처음 창립기념일을 맞았다. 삼양식품 본사는 현재 서울 중구 퇴계로 159 삼양라운드스퀘어 빌딩에 자리 잡고 있다.
행사 분위기부터 기존 창립기념식과 달랐다. 명동사옥 옥상에 대표 캐릭터 페포(PEPPO)를 활용한 포토존과 회사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적는 메시지월을 만들었다. DJ 공연과 럭키드로우도 진행했다.
김 회장도 별도의 격식을 두기보다 임직원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현장에는 수제맥주와 핑거푸드가 마련됐다.
본사 직원만을 위한 행사도 아니었다. 삼양식품은 원주·밀양·익산공장과 서울 월곡사옥 등 주요 사업장에 핫도그와 츄러스 등을 제공하는 푸드트럭을 보내 근무지가 다른 직원들도 창립기념일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경쟁사들은 창립기념일을 소비자 마케팅까지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농심이 대표적이다. 농심은 1975년 처음 출시했던 ‘농심라면’을 50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와 옛 패키지 디자인도 다시 활용했다. 농심은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꾸는 데 영향을 줬을 정도로 상징성이 큰 제품을 60주년 카드로 꺼냈다.
주력 제품에도 회사의 역사를 입혔다. 신라면·짜파게티·안성탕면·너구리의 과거 디자인을 재현한 ‘히스토리 패키지’를 한정 출시했다. 창립연도인 1965년에 맞춰 1965장의 ‘황금라면 티켓’을 제품에 넣는 소비자 이벤트도 진행했다.
행사는 식당으로도 이어졌다. 농심은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과 손잡고 전국 60개 다이닝에서 농심 라면을 활용한 특별 메뉴를 선보이는 ‘농심면가60’을 운영했다. 단순히 창립 60주년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제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만든 셈이다.
풀무원도 2024년 창사 40주년을 맞아 사내 기념식을 열고 지난 4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소비자에게는 회사의 출발점인 유기농 정신을 내세운 ‘국산콩 유기농 두부’를 40주년 한정 제품으로 선보였다.
모든 기업이 창립기념일을 축제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CJ그룹은 2023년 70주년 때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그룹 차원의 대외 70주년 행사를 별도로 열지 않고 이재현 회장 주재로 ‘ONLYONE 재건 전략회의’를 진행했다. 성장 정체 등 경영 상황을 고려해 축하 행사보다 선대의 경영철학과 위기 돌파 전략을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같은 창립기념일이라도 활용법은 제각각인 셈이다. 농심과 풀무원이 브랜드의 과거를 제품과 소비자 경험으로 연결했다면 CJ는 경영 메시지를 강조했고, 삼양식품은 올해 임직원 간 소통과 조직문화에 무게를 뒀다.
특히 삼양식품에는 올해 65주년의 의미가 작지 않다. 불닭볶음면을 앞세워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몸집을 키운 가운데 새 명동사옥으로 본사를 옮긴 뒤 처음 맞는 창립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의 매출은 2021년 6420억원에서 2025년 2조3518억원으로 4년 만에 3배 이상으로 커졌다.
기업들이 창립기념일을 바라보는 방식도 그만큼 달라졌다. 몇 주년인지를 알리는 기념식보다 직원에게는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지’, 소비자에게는 ‘이 브랜드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날로 활용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