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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이 감춘 거대 의혹… 암살의 진실 뒤쫓다

영화 ‘암살자(들)’ 23일 개봉

1974년 영부인 피격 사건 실화 소재
공범 존재 파헤치는 기자·형사 그려
유해진·이민호 등 열연 몰입감 선사

신념 지키는 사회부장役 맡은 박해일
“기자란 직종 설득력 있게 전달 고심”
‘헤어질 결심’ 후 4년 만에 영화 복귀

추석 연휴 시작 전날인 23일 한국 영화 ‘암살자(들)’과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나란히 개봉한다. ‘암살자(들)’은 1974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정면으로 끌어와 그날의 총성이 감춘 진실을 추적한다.

◆총성 뒤 진실 좇는 기자와 경찰

대통령이 연설 중이던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 총성이 울리고 영부인이 쓰러진다. 응급실로 옮겨진 ‘국모’는 수술 끝에 숨지고, 수사본부는 김대중 열성 지지자로 알려진 재일교포 2세 문태광(실존 인물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사건을 종결한다. 그러나 이 결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영화 ‘암살자(들)’에서 경찰 ‘철구’(유해진·왼쪽부터),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신참 기자 ‘영일’(이민호)이 피격사건 배후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암살자(들)’에서 경찰 ‘철구’(유해진·왼쪽부터),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신참 기자 ‘영일’(이민호)이 피격사건 배후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육 여사 저격사건을 모티브로 사건의 배후를 좇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영화는 동성일보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사회부 막내 기자 영일(이민호), 서울 중부경찰서 경감 철구(유해진)를 통해 사건의 이면을 파고든다. 육 여사를 관통한 탄환이 문태광의 것이 아니라는 데 무게를 둔 채 공범 개입 가능성에 힘을 싣고 ‘청와대 자작극설’까지 영화적 상상력을 뻗는다.

그 중심에는 베테랑 기자 재환이 있다. 중앙정보부 요원이 신문사 편집회의에 난입해 기사 한 줄, 단어 하나를 검열하고 정권에 거슬리는 기사를 쓴 기자를 납치·협박하던 시대다. 재환은 중정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휘하 기자들을 현장에 보내 사건의 진실을 좇는다. 진실을 말할 수 없던 시대, 취재수첩과 타자기를 무기 삼아 권력에 맞서는 기자들의 모습은 ‘기레기’라는 말이 일상어가 된 오늘날 대중이 꿈꾸는 ‘언론 판타지’를 드러낸다.

심지 곧고 유능한 기자를 연기한 배우 박해일은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기자라는 직종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해 주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생각했다”고 했다. 수직적인 조직생활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신문사 공간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인물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이 작품을 하려고 4년을 기다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기심이 들었다”고도 했다.

철구는 경축식 경비를 맡았다가 책임을 뒤집어쓴 평범한 경찰이다. 행사 직전 대통령경호실 경비 지침이 바뀌고, 문태광이 비표 없이 행사장에 입장한 광경을 목격한 그는 억울하게 파면되고 부하들이 피를 보는 상황에 격분해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올해 설 ‘왕과 사는 남자’에서 격변에 휘말린 평범한 촌부를 연기했던 유해진이 추석에도 소시민의 얼굴로 역사 한복판에 서게 됐다.

재벌 가문의 이단아로 기자의 길을 걷는 영일은 기업가 형을 둔 ‘금수저’ 배경을 영리하게 써먹는다. 부장 재환보다 권력의 감시를 덜 받는 데다 필요하면 집안의 연줄로 외국에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을 취재에 십분 활용한다. 이렇듯 재환, 철구, 영일 세 인물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하나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하이브미디어코프 표 현대사 연작

‘암살자(들)’은 영화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디즈니+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등을 만든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했다. 작품별 필치는 다르나 한국 현대사를 장르물로 풀어내는 일관된 흐름에 이 영화 역시 놓여 있다. 그 흐름 중에서도 ‘암살자(들)’은 뜨겁고 빠른 축에 속한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상상력을 크게 보태 인물들의 감정과 사건의 긴박함을 때로 과하다 싶을 만큼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육 여사 피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동시대 사건을 영화 절정에 끌어와 당시 언론인들의 저항을 보여준다. 억압적 시대와 언론의 투쟁을 강조하는 장치이지만, 서로 다른 맥락의 사건을 하나의 서사로 압축했다는 점에서 작위적으로 느껴질 여지도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섬세한 멜로 영화로 한국영화사에 이름을 새긴 허진호 감독에게 ‘암살자(들)’은 새로운 도전이다. 10년 전 이 영화 시나리오를 접한 그는 육 여사 피격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책, 논문 등을 찾아보며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이 영화의 힘을 만든 데는 배우들의 역할이 압도적으로 컸다. 말 그대로 ‘총출동’이다. 박해일·유해진·이민호를 비롯해 문태광 역 박정민, 영일의 형 ‘한 회장’ 역 정우성, 동성일보 소속 김대명·류혜영·배성우·김기천·오달수 등이 나온다. 이 밖에도 엄지원·박지환·심은경·오정세·신현빈·엄태웅·박해준·박성훈·류경수·임원희·최유리 등 주연급 배우들이 작은 역할까지 마다치 않고 등장한다. 스쳐 가는 배역에도 이름난 배우를 배치한 ‘멀티 캐스팅’은 영화의 큰 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