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어느 저녁, 미국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의 한 호텔. 20대 여성이 지배인에게 전화해 목사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지배인은 호텔 로비에서 예배를 열던 해리 워런 목사를 알고 있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튿날 벨뷰 병원으로 옮겨진 여성은 병상을 찾아온 워런 목사에게 “당신 같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아마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 뒤 여성은 숨졌다.
워런 목사는 다음 설교에서 “죽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내가 증명할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이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 찾아오라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세계 최초의 자살예방단체 ‘생명구하기연맹’(Save A Life League)은 그렇게 시작됐다.
워런 목사가 숨을 거둔 1940년까지 34년간 3만명 이상이 연맹의 문을 두드렸다. 뉴욕 일간지 뉴스월드의 젊은 기자였던 셰릴 웨츠스타인은 1979년 연맹을 찾았을 때 이미 적은 예산으로 명맥만 남아 있었다고, 훗날 워싱턴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회고했다. 연맹은 이제 옛 신문과 책 속에만 남아 있다.
120년이 지난 뉴욕주에서 그 일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목사가 아니라 유족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오전,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뉴욕주 퍼트넘 카운티 브루스터 메인스트리트 121번지 아동옹호센터에 닿았다. 사무실 탁자 위에 보라색 폴더가 놓여 있었다. 이 카운티에서 누군가 자살로 숨지면 첫 전화는 검시관에게서 오고, 그날 유족에게 이 폴더가 건네진다. 안에 든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 팀에는 자살로 가족을 잃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습니다. 듣고, 공감하고, 이 길을 혼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폴더를 들고 유족의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상담사가 아니다. 같은 일을 겪은 자살 유족이다. 퍼트넘 LOSS(Local Outreach to Suicide Survivors·자살 유족 지역 찾아가기)팀의 자원봉사자 12명은 모두 자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팀장인 사회복지사 말라 벨러는 “전화가 오면 우리가 어떻게 갈지 결정한다. 봉사자는 절대 혼자 보내지 않고 전문가 3명 중 1명이 반드시 같이 간다”고 말했다.
LOSS팀은 1998년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프랭크 캠벨 박사가 만든 모델이다. 위기개입센터장이던 캠벨은 카운티 검시관보를 자원봉사로 겸했고, 첫 팀은 검시관실에서 출발했다. 유족이 도움을 청하러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검시관·경찰과 함께 사망 당일 찾아간다는 발상은 거기서 나왔다.
캠벨의 연구에서 유족이 스스로 도움을 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4.5년이었고, 이 모델을 적용하자 39일로 줄었다.
LOSS팀이 공유하는 원칙은 셋이다. 먼저 찾아간다, 함께 가는 사람 중 한 명 이상은 유족이다, 목적은 희망을 심는 것이다. 지금 미국 25개 주 110곳에서 팀이 활동하고 39곳이 준비 중이다. 뉴욕주는 2022년부터 시범사업으로 팀 구성을 지원해 4개 카운티에 팀이 만들어졌다.
퍼트넘은 인구 10만명 남짓한 작은 카운티다. 자살 사망은 한 해 평균 12명으로, 인구 10만명당으로 따지면 한국(29.1명·2024년)의 40% 수준이다. 봉사자는 사별 후 최소 1년이 지나야 하고 미국자살예방재단(AFSP)의 훈련을 거친다.
현장에서 하는 말과 하지 않는 말은 정해져 있다. 유감을 표하고, 필요한 것을 묻고, 곁에 있는다. 벨러는 “우리가 전하는 건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도 같은 일을 겪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봉사자들은 현장을 떠나기 전 반드시 서로 묻는다. 무엇이 잘됐나, 무엇이 어색했나, 지금 기분은 어떤가, 운전해서 집에 갈 수 있겠나. 유족에게는 첫 주에 안내 꾸러미가, 기일과 생일에는 카드가 간다. 팀이 살피는 사람은 유족만이 아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에게도 연락하고, 미성년자가 있으면 학교로 간다.
카운티 소재지 카멜에서 매달 둘째·넷째 월요일 저녁 6시30분에 열리는 유족 모임 ‘마음 나누기’도 딸을 잃은 어머니가 이끈다. 유족의 자살 위험이 높기에 팀은 이 일을 예방이라고 부른다. 한국이 만든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퍼트넘 카운티 폴 탕 정신보건국장은 ‘인프라’라고 답했다. 그는 “검시관과 의료, 경찰, 소방이 하나의 지원망으로 묶여 있고 LOSS팀은 그 안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자살 유족에게 애도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지난 1일 오전 맨해튼 암스테르담 애비뉴 1255번지 컬럼비아대 사회복지대학원 829호. 장기애도센터의 나탈리아 스크리츠카야 박사는 장기애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간은 가는데 슬픔은 그대로다. 10년이 지나도 방금 죽은 것 같다고 호소한다. 일하고, 사람과 연결되고, 삶을 즐기는 능력이 손상된다.”
지속성 비탄장애(PGD·장기애도장애)는 2022년 미국정신의학회 진단편람에 정식 진단명으로 올랐다. 센터는 캐서린 시어 교수가 16회기 대화 치료(PGT·지속성 비탄 치료)를 개발한 뒤 2013년 세운 곳이다. 스크리츠카야 박사는 “애도를 없애는 게 아니라 애도와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스크리츠카야 박사가 참여한 2016년 임상시험에서 장기애도 환자 395명 중 16회기 치료를 받은 집단은 82.5%가 호전됐고 위약 집단은 54.8%만 호전됐다. 항우울제만 받은 집단은 위약 집단과 큰 차이가 없었다. 자살 유족 58명만 따로 본 2018년 분석에서는 약만 받은 유족의 복약 완료율이 36%에 그쳤지만 16회기 치료 완료율은 74%로 다른 유족과 같았고, 치료 전 40%가 넘던 적극적 자살 생각은 치료를 마친 22명 중 한 명도 보고되지 않았다. 스크리츠카야 박사는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임상에서는 한 사람의 자살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 간극이 유족을 ‘내가 뭘 놓쳤나’ 하고 파고드는 탐정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 죄책감에 답을 찾는 사람이 있다. 뉴욕 마운트시나이 의대 이고르 칼린거 정신과 교수는 15년 연구로 ‘자살위기증후군’(SCS·Suicide Crisis Syndrome)을 정리했다. 자살자의 75%는 곧 실행하겠다는 뜻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죽겠다는 의식적인 결심조차 사망 15분에서 1시간 전에야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칼린거 교수는 “징조가 정말 없었을 수 있다. 증상이 아직 오지 않았던 것이다. 징조가 있었더라도 무엇을 봐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우리는 심장마비와 뇌졸중의 징후는 배우지만 자살 직전의 정신 상태는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올해 7월 처음으로 장기애도 공식 트레이너 워크숍이 열렸다. 이를 주선한 경기 안산마음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정유경 전문의는 “모든 유족의 애도를 병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전문 치료가 필요한 지속애도장애를 가려내 연결하는 것이 과제”라며 “초기 유족 지원과 동료 유족 지원, 지역사회 서비스, 근거 기반 전문치료가 끊기지 않고 단계적으로 연결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뉴욕주정부 공무원으로 26년간 일한 뉴욕시아동정신병원 손해인 심사평가부장은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유족의 범위에서 찾았다. 미국은 ‘가족’ 대신 ‘서바이버’(남겨진 사람)와 ‘러브드 원’(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쓴다. 손 부장은 “자살은 가족뿐 아니라 고인과 연결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며 “학교와 직장, 교회, 의료진처럼 영향받는 집단마다 지침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LOSS팀 폴더의 마지막 장에는 위기전화 988이 적혀 있다. 브루스터의 보라색 폴더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늘 우리는 잠시 멈춰 당신이 사랑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