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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李정부 실용주의의 역설

탈이념·탈진영 강조해온 李대통령
정치적 충돌 큰 사안선 ‘결정 유보’
당 노선 경쟁 격화·국정 혼선 초래
18일 회견서 원칙과 기준 보여줘야

잘나갈 때는 조직의 균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성과가 좋으면 다른 목소리도 묻힌다. 실적이 꺾이면 다르다. 누구는 더 세게 갔어야 했다고, 누구는 방향부터 틀렸다고 한다. 위기는 없던 균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잘될 때 가려졌던 균열을 드러낸다.

요즘 여권이 그렇다. 추미애 경기지사는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내란 세력에게 업혀 전전긍긍한다”고 직격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안착해야 할 시점에 안팎의 세력들이 힘을 합쳐 탄핵하려 했던 전조와 비슷하다”고 맞받았다.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은 김 대표가 ‘노무현 탄핵’을 꺼내 ‘이재명 탄핵’을 퍼뜨렸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전 대표는 대통령이 검찰에 “뒤통수를 맞은 것 아닌가”라고 했고, 윤건영 의원은 “국민을 이기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귀전 정치부장
이귀전 정치부장

처방이 다른 것은 감정싸움 때문만은 아니다. 각자가 보는 ‘이재명정부’가 다르다. 추 지사와 정 전 대표에게 이 정부는 내란 청산과 검찰개혁을 밀어붙여야 할 정부다. 김 대표는 정권 안착과 성과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본다. 조 원장은 진보개혁의 가치와 연대를 강조하고, 윤 의원은 무너진 신뢰부터 보라고 한다.

혼선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이 대통령은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를 강조해 왔다. 문제는 정치적 충돌이 큰 사안에서 실용이 ‘결정의 유보’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보완수사권 논란 때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도 “결론은 국회에 맡기기로 했다”고 했다. 조작기소 특검도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최종 판단은 국회에 맡겼다.

국회에 맡긴다는 말에는 여야가 토론하고 숙의해 결론을 내 달라는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민주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야당 동의 없이도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 보완수사권 폐지 형사소송법도 민주당 주도로 처리됐다. 이런 구도에선 국회에 판단을 맡겨도 최종 결정은 여당 내부 선택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결정을 유보한 공간에서 당내 노선 경쟁이 선명해진 이유다. 그렇다고 책임까지 국회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입법 결과도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함께 평가한다.

국회 존중의 명분도 있었다. 그러나 미뤄진 결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거치며 빈자리를 당심과 선명성 경쟁이 채웠다. 보완수사권 폐지 뒤에도 공소청 직제와 중수청 인사를 놓고 ‘개혁 후퇴’와 ‘과격한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충돌했다. 열어둔 공간이 ‘이재명정부론’의 각축장이 된 셈이다.

지난 14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33.8%로 9주 연속 하락했고, 민주당 지지도도 36.1%로 내려갔다. 숫자는 원인이라기보다 촉매에 가깝다. 지지율이 만든 결속력이 약해지자 차이가 밖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국민의 눈에는 더 단순하다. 대통령은 실용을 말하고 여권 정치인들은 개혁 강화와 단합, 신뢰 회복을 외친다. 정치인들에겐 노선 문제이지만 국민에게 남는 질문은 “그래서 이 정부는 어디로 가느냐”다. 대통령이 비워둔 공간을 주변 정치인들이 채우면서 노선 경쟁은 국정 혼선으로 읽히고 있다.

김 대표는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두고 “법 위에 민심이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민심은 대통령과 여당에도 적용돼야 한다. 다만 민심을 살피는 것과 판단을 미루는 것은 다르다. 대통령에겐 모두를 만족시킬 선택지가 없는 순간이 온다. 그때는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 정해 그 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 실용은 결정을 피하는 정치가 아니라 선택의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책임지는 정치여야 한다.

18일 기자회견은 그래서 이전과 다르다. 개별 현안보다 중요한 것은 범여권의 혼란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다. 여러 정치인이 다른 ‘이재명정부’를 말하는 지금, 실용이 상충하는 요구 앞에서 어떤 원칙으로 작동하는지 대통령이 보여줘야 한다. 밀어붙일 것과 물러설 것의 기준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경계선을 긋지 않으면 주변 정치인들이 대신 그을 것이다. 그때 실용은 유연함이 아니라 방향 상실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