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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동기’ 김민석·추미애 충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1996년 제15대 총선은 당시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총재이던 김영삼(YS) 대통령과 새정치국민회의(현 더불어민주당)를 이끌던 김대중(DJ) 총재의 마지막 진검승부였다. YS와 DJ 둘 다 참신한 신예 정치인들을 대거 발굴해 21세기를 앞둔 한국 정치의 판도를 바꾸려는 의지가 강렬했다. 이회창(전 국무총리) 정의화(전 국회의장) 김문수(전 고용노동부 장관) 김무성(전 새누리당 대표) 이재오(전 특임장관) 홍준표(전 대구시장) 등이 YS의 발탁에 힘입어 정치권에 입문한 사람들이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과 추미애 경기지사. 두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30년 전인 1996년 제15대 총선을 거쳐 초선 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뉴시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과 추미애 경기지사. 두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30년 전인 1996년 제15대 총선을 거쳐 초선 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뉴시스

DJ도 만만치 않았다. 김민석(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전 국무총리) 정동영(통일부 장관) 추미애(경기지사) 김근태(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DJ로부터 낙점을 받은 뒤 서울 여의도 중앙 정치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민석 현 민주당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DJ가 직접 점찍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82년 사법시험 합격 후 10여년간 판사로 일하다가 정계에 입문한 추미애 현 지사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DJ가 직접 ‘서울 광진을(乙)’ 지역구를 골라 그에게 출마할 것을 제안했겠는가. 6선 의원 출신인 추 지사는 광진을에서만 5차례 당선됐다.

 

이처럼 DJ와 각별했던 김민석과 추미애는 2000년 재선 의원 고지에 오른 뒤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둘 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이 있다. 김민석은 2002년 대선 당시 노 후보 지지율이 떨어지자 민주당을 탈당하고 정몽준 후보 편에 섰다. 이 일로 ‘김민석’과 ‘철새’의 합성어인 ‘김민새’로 불리며 한동안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3선 의원 고지에 오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추미애는 노무현정부 출범 후 기존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당되는 과정에서 민주당 편에 섰다. 그리고 2004년 보수 야당의 노 대통령 탄핵소추에 가담했다. 그 결과 2004년 4월 총선에서 참패하며 역시 내리 3선을 기록하려던 꿈이 좌절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의 확대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이동하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의 확대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이동하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민석과 추미애는 1996년 나란히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래 30년 동안 나란히 정계에 몸담은 만큼 서로 절친한 사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정부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며 둘 사이도 멀어진 듯하다. 지난 12일 추미애는 이 대통령을 겨냥해 “내란 세력을 징벌해야 하는데 왜 이들 세력에게 업혀서 전전긍긍하는 것인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김민석은 이튿날인 14일 “노 대통령이 안착(해야 할 시점)에 안팎의 세력들이 힘을 합쳐 탄핵하려 했던 전조와 비슷한 상황”이란 견해를 밝혔다. 추미애가 과거 노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점을 겨냥항 발언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 임기 만료 이후를 겨냥한 권력 투쟁이 조기에 가시화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날씨보다 더 변화무쌍한 것이 바로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