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남정훈 기자] “이게 무슨 기분이지 하면서 눈물도 살짝 났지 뭐에요”
V리그 2년차 리베로 정솔민(19)은 지난달 10일, 나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 9월 2025~2026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페퍼저축은행의 지명을 받아 제한된 기회 속에 잠재력을 드러냈던 그는 2년차 시즌을 앞두고 IBK기업은행으로 트레이드됐다. SOOP에게 인수되기 전에 페퍼저축은행이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박정아(도로공사)와 이한비(현대건설)를 팔아넘긴 여파를 메우기 위해 SOOP는 아웃사이드 히터 보강에 열을 올렸고, 팀 내에 트레이드 가치가 높은 축에 속하는 2년차 유망주 리베로 정솔민을 IBK기업은행에 내주고 9년차 아웃사이드 히터 고의정과 2026~2027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온 것이다.
1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프로 데뷔 팀에 대한 애정이 꽤 컸던 걸까. 지난 11일 용인 기흥구의 IBK기업은행 연수원에서 만난 정솔민은 “너무 갑작스러웠죠. 언니들끼리 ‘이제 뭔가 트레이드가 나올 것 같다’던 대화를 듣긴 했는데, 그게 제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거든요. 국장님께 전화를 받고 너무 놀랐죠. 전화를 끊고는 이게 무슨 기분이지 하면서 눈물도 났어요. 제가 원래 정이 좀 많은 편이거든요”라고 트레이드 당시의 심정을 털어놨다. 이어 “짐을 챙기고 언니들한테 인사할 때도 뭔가 울컥하더라고요. 그래서 언니들 앞에서도 울었더니 언니들도 안아주고 그랬죠”라면서 “지난 시즌을 마치고 팀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4개월 동안 훈련도 제대로 못 하다가 SOOP 인수가 결정되고, 다들 ‘이제 다 같이 열심히 해보자’라고 으쌰으쌰하던 중에 이적 소식을 들으니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정솔민의 트레이드는 어쩌면 어머니가 먼저 알았을지도 모른다. “엄마한테 트레이드됐다고 얘기하려 전화했을 때, 엄마가 대뜸 ‘너 이적하니?’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꿈에서 이적 같은 걸 의미하는 꿈을 꾸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본가도 광주다 보니 페퍼저축은행에서 뛸 땐 경기를 자주 보러 오셨는데, 이젠 멀어져서 그러지 못하게 된 건 좀 아쉬워요.
이적 후 한 달 남짓 지났지만, 이제 IBK기업은행이 내 팀이라는 소속감이 생겼다는 정솔민이다. “일본인 감독님이 오셨다는 얘길 듣고, ‘나도 언젠가는 일본인 감독님 밑에서 배워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IBK기업은행으로 오게 됐네요. 전통이 있는 팀이다 보니 체계도 잘 잡혀있고, 숙소와 훈련장이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아요. 페퍼저축은행 땐 아파트 숙소에서 훈련장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거든요. 근데 여기선 방에 있다가 한 층만 올라가면 훈련장이니까요. 3초면 도착할 수 있으니 그게 너무 좋아요”
큰 기대를 받으며 트레이드됐지만, 지난 시즌보다는 출전 시간이 더 적어질 지도 모른다. 페퍼저축은행에선 한다혜에 이은 제2 리베로로 뛰었던 정솔민이지만, IBK기업은행에는 명실상부 현역 최고 리베로인 임명옥이 있고, 김채원이나 남은서 등 백업 리베로도 풍부하다. “기회는 좀 줄어들겠지만, 언니들한테 배울 게 더 많아서 저는 오히려 좋아요. 열심히 배우려고요”
리베로는 리시브형과 디그형으로 나뉜다. 물론 만능형 리베로도 있지만, 아무래도 둘 중 하나에 특화된 리베로들이 많다. ‘현재’ 정솔민은 디그형 리베로다. 이에 대해 묻자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디그에 비해 리시브는 떨어지는 게 맞아요”라고 쿨하게 답했다. 이어 “리시브에 관해선 역대 최고인 명옥 언니가 우리 팀에 있으니까 많이 알려주세요. 하나를 물어보면 두 세 개를 알려주세요. 다만 언니는 키가 1m75로 크고, 저는 1m67로 작다보니까 폼 자체를 따라하긴 어려운데, 타이밍이나 노하우를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정솔민의 멘토인, 나이 차이만 21살이 나는 대선배인 임명옥도 정솔민에 대해 극찬했다. 임명옥은 “(정)솔민이가 제게 제일 많이 질문하는 후배일거에요. 후배들이 제게 질문할 때 지극히 감각적인 부분, 예를 들면 상황을 빨리 읽는 시야라던가, 리시브할 때 공을 ‘팡’ 치는 느낌 같은 거 이런 거 물어볼 땐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난감한데, 솔민이는 그런 거보다는 ‘언니, 2단 연결할 때 언니는 앞에서 툭 치던데, 그럴 땐 발 위치를 어떻게 잡아요?’ 같은 디테일한 질문을 많이 해요. 어느날은 2단 토스 연습할 때 제가 오른발로 점프를 떠서 했는데, 다음날 와보니 훈련 때 솔민이가 그걸 하고 있는거에요. 눈썰미가 좋은거죠. 지금 봐도 솔민이가 디그는 정말 잘해요. 진짜 빠르거든요. 좋은 리베로가 될 거에요”라고 치켜세웠다.
시계를 돌려 배구 시작했을 때를 물었다. 어릴 때부터 키도 큰 편이었고, 운동하는 걸 좋아해 합기도를 배우기도 했던 정솔민은 광주에서 배구부가 있는 치평초에서 인근 초교의 4학년 중 배구를 할 아이들을 알아볼 때 불려나갔다. 배구부 활동을 참관한 정솔민은 배구가 너무 재밌어보였고, 곧바로 배구 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1m67의 단신 리베로지만, 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장신 선수였단다. “지금 키랑 별 차이가 없었어요. 어릴 때 다 컸나봐요. 그래서 저 중학교 때까지는 미들 블로커였어요. 중학교에선 미들 블로커가 에이스거든요. 블로킹 잡고 공격하고, 제가 다 했죠”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좀처럼 키가 크지 않는거였다. “고등학교 올라갈 때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키는 더 안 크고, 네트도 높아지는데 아웃사이드 히터를 하기엔 키가 너무 작은거죠. 그래서 고2까지는 아웃사이드 히터와 리베로를 병행하다가 고3부터 리베로 포지션에 정착했죠. 좀처럼 크지 않는 키에 대해 중학교 때까지는 원망도 많이 했던거 같은데, 이젠 리베로 포지션에 만족해요”
페퍼저축은행의 인수가 표류될 때 모교인 근영여고로 가서 ‘고등학교 4학년’처럼 먹고 자며 몸을 만들어왔던 정솔민. 채 1년도 있지 않았지만, ‘친정팀’인 SOOP과의 맞대결이 기다려진다는 정솔민이다. “지난 시즌보다는 기회가 덜 올 수 있겠지만, 그래도 출전했을 때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께요. 팬분들도 많이 기대해주시고, 저 정솔민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