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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흙수저’ 모레노, 한국 축구를 구해줘!

데이터 전술가 A매치 지휘… ‘소방수’ 역할 기대

경제 용어 중에 ‘기저효과’가 있다. 흔히 경제성장률 등 경제 지표를 전년 동기 대비 비교할 때 볼 수 있는 용어다. 성장률 등의 지표를 전년 혹은 특정 기준시점과 비교했을 때, 기준시점의 수치가 이례적으로 낮거나 높아 현재의 증감률이 실제보다 과장 혹은 축소되어 보이는 통계 착시를 이르는 말이다.

기저는 비교의 기준이 되는 시점의 값을 의미하는데, 기준값이 너무 낮으면 작은 회복으로도 큰 성장(증가율)으로 보일 수 있고, 너무 높으면 꽤 성장을 했어도 성장률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차장
남정훈 문화체육부 차장

경제 용어를 축구에 대입하는 게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한국 축구 대표팀의 임시 감독직에 부임한 로베르트 모레노(스페인) 감독도 기저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전임 사령탑이 홍명보 감독이기 때문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참사’로 대표되는 대실패를 겪었던 홍 감독.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4년 선임 과정부터 ‘빵집 회동’이라 불리는 졸속, 공정성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다시 한번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2026 북중미 월드컵에 나섰지만,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를 확정지을 수 있었던 남아공전에서의 충격패로 또 한 번 대참사를 겪었다.

이런 감독 뒤에 정상적인 절차 뒤에 지휘봉을 잡았으니 9~11월 A매치 6경기에서 평타만 쳐도 ‘굉장히’ 능력 있는 감독으로 보일 수 있다.

홍명보와 모레노, 두 축구인은 너무나도 대비되는 커리어를 지녔다. 홍 감독은 선수로만 월드컵을 4회(1990~2002) 출전했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때 주장을 맡는 등 오랜 기간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이런 상징성 덕분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고도 ‘꽃길’만 걸었지만, 그 말로는 처참했다.

반면 모레노 감독은 선수 경력은 유소년 때가 전부로, 프로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전무하다. 10대 후반부터 유소년 선수들 지도자를 시작해 ‘무적함대’ 스페인 대표팀 사령탑까지 역임한, 전형적인 ‘흙수저’ 유형의 지도자다.

감독 스타일도 판이하게 다르다. 명선수 출신이지만, 홍 감독은 전술적으론 무능에 가깝다. 남아공전에서 0-1로 뒤진 후반에 센터백 김민재를 빼고 같은 포지션의 박진섭을 투입할 정도로, 인게임 조정 능력이 제로에 수렴한다. 대신 특유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팀 분위기를 다잡는 매니저형 감독이다.

선수 커리어가 미약한 모레노 감독은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포츠 과학과 빅데이터 분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데이터 기반의 전술가형 지도자다. 고정된 포메이션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한 전술과 포지션 유동성,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맞는 전술을 사용한다. 대표팀 수비수 대부분이 소속팀에서 포백 시스템하에서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리백 전술을 고집했던 홍 감독과는 전술적 차원을 달리한다.

직접 플레이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임에도 그간 한국 스포츠는 현역 시절의 ‘이름값’에 치중해 지도자감을 발탁해 왔다. 홍 감독이 대표적인 예다.

모레노 감독이 9~11월 A매치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스타 선수 출신이 대다수를 이루는 한국 스포츠계의 지도자 지형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아울러 싸늘하게 식은 축구 팬들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모레노, 한국 축구를 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