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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할 틈이 없네… 일본 가는 길 ‘바다 위의 호캉스’ [농어촌이 미래다-그린 라이프]

‘팬스타 미라클호’ 타보니

국내 유일·최초 크루즈급 국제 여객선
부산∼오사카 왕복 운항… 편도 17시간
여객·편의 기능에 컨테이너 등 운송도

카페·사우나·면세점 등 즐길거리 풍성
선체 흔들림 억제 장치도 갖춰 안정적
해진공 채무보증 등 금융 지원 덕 ‘순항’
“가족과 여유롭게 바다를 보면서 일본을 가는 것이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지난 6일 부산시 동구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오후 1시가 넘자 한적하던 터미널은 순식간에 수백 명의 승객으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가방에 꽂힌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단체 여행객부터 가족 및 연인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의 승객이 배에 오를 준비로 분주했다. 이들이 탑승하려는 배는 국내 유일 크루즈급 국제여객선인 ‘팬스타 미라클호’.

국내 유일 크루즈급 국제여객선인 ‘팬스타 미라클호’ 모습. 2만2000t급 미라클호는 크루즈와 페리 기능을 결합한 선박으로 여객 355명과 승무원 44명을 태울 수 있다. 팬스타그룹 제공
국내 유일 크루즈급 국제여객선인 ‘팬스타 미라클호’ 모습. 2만2000t급 미라클호는 크루즈와 페리 기능을 결합한 선박으로 여객 355명과 승무원 44명을 태울 수 있다. 팬스타그룹 제공

미라클호는 국내 선사가 국내 조선소에 발주해 건조한 국내 최초 크루즈급 국제여객선이다. 크루즈의 여객·편의 기능에 컨테이너 등 화물을 운송하는 페리 기능을 결합한 2만2000t급 미라클호는 부산과 오사카를 주 3회 왕복한다. 지난해 4월 첫 출항 이후 올해 7월까지 381번의 항해에 6만7306명이 탑승했고, 운송한 화물만 4만6369TEU에 달한다. 편도 운항시간은 17시간으로, 오후 3시쯤 부산에서 출발해 이튿날 아침 오사카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오후 2시쯤 시작된 출국수속을 빠르게 마치자 긴 출국장 옆 창문 틈으로 ‘팬스타 크루즈’(PanStar Cruise)라는 푸른색 글씨가 적힌 거대한 선박이 모습을 드러냈다. 7살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잰걸음으로 선체로 향하던 김은영(42·여·가명)씨는 “일본 오사카는 두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배를 타고 가는 건 처음”이라며 “선내 즐길 거리가 많다고 해서 가족과 모처럼 바다 위에서 하룻밤 호캉스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크루즈를 예매했다”고 말했다. 비행기라면 부산에서 오사카까지 1시간여 만에 도착할 수 있지만, 이들은 ‘이동이 곧 여행’이 되는 바닷길을 선택한 것이다.

선내에 진입하자 피아노 라이브 공연과 웰컴 드링크가 승객들을 맞았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객실로 이동하니 호텔처럼 깔끔한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천장과 벽면에는 목재 느낌의 마감재를 사용하고 침대 머리맡에는 은은한 간접조명을 배치했다. 국내 업체가 직접 설치한 선내 인테리어와 가구에서는 통상의 여객선에서 자주 봤던 투박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발코니 객실에서는 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항해할 수도 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짐을 풀던 승객들은 객실에서 하나둘 나와 선내 시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일부는 최상층 야외데크에 마련된 솔라리움에서 멀어지는 육지를 사진에 담고 있었다. 선내 5층에는 피트니스 시설, 카페, 공연장, 사우나, 면세점 등이 마련돼 있어 승객들이 저마다 즐길 거리를 찾아 시간을 보냈다.

가족 단위 승객들은 푹신한 바닥과 게임기가 마련된 키즈클럽에 자리를 잡았다. 통유리 너머로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승객들 옆에는 위스키를 구매하기 위해 면세점에 줄을 선 이들도 보였다. 한쪽에 마련된 ‘카지노게임바’는 쉽게 접하기 힘든 룰렛, 슬롯머신 등 카지노 게임을 포인트를 사용해 경험해 볼 수 있다. 간단한 스낵을 채워놓은 편의점엔 남학생들이 모였고, 네일아트를 받을 수 있는 공간엔 여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양한 색상의 매니큐어를 구경하고 있었다. 미라클호 야외에 마련된 포장마차, 수영장은 이번 항해에선 개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행하는 시간을 즐기기엔 선내 시설이 부족하지 않았다. 해가 저물자 레스토랑에는 승객들이 하나둘 모여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와인을 즐기거나 라이브 공연을 관람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비행기와 달리 17시간이라는 긴 이동시간이 숙박과 식사, 휴식으로 채워졌다.

팬스타 미라클호 객실. 객실 인테리어와 가구는 국내 업체가 참여했다. 발코니에서 바다를 보며 항해할 수 있다.
팬스타 미라클호 객실. 객실 인테리어와 가구는 국내 업체가 참여했다. 발코니에서 바다를 보며 항해할 수 있다.
팬스타 미라클호 레스토랑 모습. 승객들이 항해 중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창가 주변에 테이블을 배치했다. 현상철 기자
팬스타 미라클호 레스토랑 모습. 승객들이 항해 중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창가 주변에 테이블을 배치했다. 현상철 기자

공교롭게 이날 대한해협은 태풍 카라반의 간접 영향권에 들면서 최근 1년 중 가장 높은 평균 3.5m의 파도가 넘실댔다. 복도를 걷다 보면 순간적으로 몸이 한쪽으로 쏠렸으나, 넘어질 정도로 흔들리지 않아 날씨상황에 비해 안정적인 항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스타 관계자는 “선체 양쪽에 ‘핀 스테빌라이저’가 장착돼 좌우 흔들림을 줄여주고, 유사시 인접 항구로 귀환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핀 스테빌라이저는 물속에서 날개 형태의 장치를 펼쳐 선체의 좌우 흔들림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미라클호가 실제 바다에 뜨기까지는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중소선사 특별지원 프로그램’이 한몫했다. 팬스타는 미라클호 선가의 80%를 금융기관에서 조달했는데, 이 중 95%를 해진공이 채무보증했다. 취항 이후에도 회사채 인수 등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했고, 올해는 기존 달러화 대출을 엔화 대출로 바꾸는 재금융도 지원했다. 이번 재금융을 통해 팬스타는 연간 약 17억원의 금융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추산된다. 해진공 관계자는 “정책금융을 통해 중소선사의 신조선 확보를 지원하고 국내 조선소의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로 연결한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