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기후변화로 인한 빠른 해빙으로 생기는 빙하 없는 바닷길, 바로 북극항로 선점을 둘러싼 각축이 한창이다. 북극항로는 통상 러시아 연안을 따르는 약 6000㎞의 북동항로(NSR)를 가리킨다. 북동항로를 기준으로 부산∼로테르담의 거리는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기존 항로보다 약 7000㎞, 비율로는 32%나 짧다. 운항 기간도 10일 이상 단축돼 국제 물류 구조 재편의 ‘해상 게임 체인저’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물류 운송의 경제적 이점 외에,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파와 홍해 사태 등 중동 불확실성으로 특정 항로 의존 위험이 크게 부각되자 공급망 다변화 수단으로서의 가치도 커졌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이 항로 선점 경쟁에 나서면서 국제 정치·에너지 안보가 교차하는 패권 경쟁의 전략적 이슈로도 부상했다. 우리에게도 부산항 등 거점항만의 위상 강화와 물류 허브로의 도약 기회 제공에 중요성이 매우 크다.
러시아는 북극항로 대부분이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한다는 점을 앞세워 국영 원자력 공사 로사톰(Rosatom)을 통해 쇄빙선 운영과 북극항로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전 세계 70개 이상 국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운항 허가와 쇄빙·구난·항만·통신 서비스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권을 행사하면서 북극 에너지와 원자재의 아시아 수출 대안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18년 발간한 북극 정책 백서에서 자신을 ‘근북극국가(近北極國家)’로 규정하면서 북극을 자국 해양전략의 새로운 축으로 편입시켰다. 일대일로 구상을 북극까지 연장한 ‘빙상 실크로드’를 공식화하면서, 쇄빙선 건조, 연구기지 확충,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을 병행하고 있다. 또 미국 주도의 중동·유럽 해상 통제망을 우회하는 해상 대전략을 공식화하면서 64차례의 북극항로 운항 경험을 통해 항로 선점에 앞서가는 중이다.
특히 중국의 북극항로 개척은 전략적 의미가 매우 크다. 이미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이중 용도 구조물을 설치하는 서해 내해화(西海內海化) 전략은 물론, 5월 일본·필리핀 EEZ 협상 이후에는 대만 동부 해역에서 외국 선박 정보 요청과 해경 순찰 상시화로 해양 관할권 확대를 노골화하고 있다. 제1도련선을 기점으로 한 미국의 견제에 대응해 서해에서 대만 동부, 북극까지 전방위로 해양 관할권과 항로 확장으로 봉쇄의 돌파를 꾀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도 북극항로 개척에 노력 중이다. ‘북극항로 구축 지원 특별법’ 제정 논의와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 등 제도적 기반 마련 추진과 함께 8월22일, 한국 선박이 10년 만에 북극항로 시범 운항도 했다. 운항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북극항로의 잠재력은 확인됐다. 그러나 운항 기간이 여름·가을에 국한되고, 유빙 예측이 어려우며 내빙선·보험·극지 선원·구난·통신 등 추가 비용도 따르는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 점에서 북극항로는 한국에 기회인지 아니면 방관의 취약지대가 될 것인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위기 시 활용할 ‘대안 경로’라는 ‘옵션 가치’ 외에 단순 물류보다 조선·서비스 시장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쇄빙·내빙·액화천연가스(LNG)선 수요, 선급·보험·극지선원(極地船員) 관리라는 신시장, 부산항 중심의 환적·정비 서비스라는 새로운 사업 확장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증 자료 축적과 경제성·환경성·제재 적합성의 독립적 평가 축적이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만의 독자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안보 측면에서 한·미·일 협력이 필요하다. 우선 북극항로를 둘러싼 규칙·안전·정보 공유 체계의 공동 구축에 나서야 한다. 위성·선박자동식별장치(AIS)·기상·빙해 정보를 결합한 ‘공동 해양 상황 인식’(MDA) 체계 구축을 통한 경로 최적화, 북극 수색구조·오염방제·통신 훈련 정례화 추진과 함께, 북극 선급·보험·제재 준수·항만 사이버보안의 공통 기준 마련도 필요하다.
북극항로의 질서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중국의 해양 확장과 러시아와 미국의 각축 상황에서, 한국은 적어도 규칙의 공동 제정자가 돼야 한다. 이것이 북극항로를 경제와 안보 자산으로 바꾸는 첩경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전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