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나로 와인 감별하던 은잔 ‘타스트뱅’
1934년 탄생 부르고뉴 기사단 이름으로
남편과 도멘 흐모리께 일군 엘렌 라쿠르
1948년 타스트뱅 첫 여성 기사로 선정
DRC 라 타쉬 옆 ‘오 드쉬 데 말콩소르’
그랑크뤼 같은 1er 피노누아로 명성
유럽의 와인 행사장에 가면 소믈리에들이 묵직한 은빛 줄에 매단 둥근 은잔을 목에 걸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이 은잔을 ‘타스트뱅(Tastevin)’이라 부릅니다. 프랑스어로 ‘와인을 맛보다’는 뜻입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지하 셀러에서 와인을 시음하던 도구가 바로 이 은잔입니다. ‘부르고뉴 와인의 수호자’로 불리는 타스트뱅 기사단(Chevaliers du Tastevin)의 이름은 바로 이런 전통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기사단에 처음 들어간 여성 와인 생산자가 있습니다. 남편 루이 흐모리께(Louis Remoriquet)와 도멘 흐모리께(Domaine Remoriquet)를 일군 엘렌 라쿠르(Hélène Lacour)입니다.
◆타스트뱅 기사단과 은잔 이야기
17세기부터 부르고뉴의 와인 메이커와 셀러 마스터들은 이 은잔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당시는 전기가 없어 지하 저장고가 몹시 어두웠습니다. 촛불 하나로 오크통 속 와인 상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둥근 은잔을 만들었습니다. 와인을 조금만 부어도 표면에 넓게 퍼지도록 만든 겁니다. 잔 안쪽에는 특별한 장치를 새겼습니다. 둥근 홈은 ‘퀴퓔(Cupules)’, 줄무늬 홈은 ‘고르동(Gordons)’이라 부릅니다. 이 홈들이 작은 반사판 역할을 했습니다. 희미한 촛불을 여러 방향으로 증폭시켜, 와인의 맑기와 색깔,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까지 정확히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손잡이에는 뱀 모양 장식을 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를 상징하는 장식입니다. 목에 걸고 다닐 수 있게 사슬도 달았습니다. 이 은잔을 곁에 두던 사람들은 17~18세기부터 이미 부르고뉴 곳곳에서 술의 신, 바쿠스(Bacchus)를 섬기는 형제회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핵심이 되는 모임이 ‘오르드르 데 뷔뵈르 리브르 드 부르고뉴(Ordre des Buveurs Libres de Bourgogne)’로 ‘부르고뉴 자유 음주가 협회’란 뜻입니다.
1930년대 들어 세계는 큰 불황을 겪었습니다. 당연히 부르고뉴 와인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창고에 와인이 쌓이고, 농부들은 힘들어졌습니다.
이때 두 사람이 나섰습니다. 조르주 페블레(Georges Faiveley)와 카미유 로디에(Camille Rodier)입니다. 페블레는 1825년 뉘 생 조르주에 도멘 페블레(Domaine Faiveley)를 세운 피에르 페블레(Pierre Faiveley)의 뒤를 이어, 4대째 도멘을 이끈 인물로 직접 와인을 만들고 파는 생산자였습니다. 로디에는 부르고뉴 와인의 역사를 다룬 책 ‘르 뱅 드 부르고뉴(Le Vin de Bourgogne)’를 쓴 저술가였습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과 와인을 기록하는 사람, 이 둘이 뭉친 겁니다. 이들의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사람들이 와인을 안 사면, 직접 불러서 마시게 하자.” 그래서 이들은 옛날부터 있던 자유 음주가 협회를 비롯한 형제회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1934년 11월 16일 뉘 생 조르주의 카보 뉘통(Caveau Nuiton)에서 오랜 부르고뉴의 전통을 현대적인 기사단으로 재조직합니다. 바로 타스트뱅 기사단(Confrérie des Chevaliers du Tastevin)입니다.
현재 전 세계 1만2000명이 가입한 기사단은 부르고뉴의 모든 것을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뛰어난 와인과 전통 음식은 물론, 이 지역의 축제와 풍습, 민속문화를 지키고 되살리는 일, 그리고 부르고뉴 관광을 키우는 일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칩니다. 대표적인 행사가 여러 마을을 돌며 열리는 와인 축제 ‘생 뱅상 투르낭트(Saint Vincent Tournante)’입니다.
또 1944년에는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성을 매입해 복원하는 데도 크게 기여합니다. 이 성은 옛 시토 수도회의 성지이자, 부르고뉴 와인 산지의 중심에 선 진정한 ‘부르고뉴의 아크로폴리스’ 같은 곳입니다. 이후 이 성은 타스트뱅 기사단의 본부가 됐습니다.
와인 품질을 높이는 일에도 힘을 보탭니다. 매년 봄과 가을, 클로 드 부조 성에서 특별한 시음회가 열립니다. 생산자가 직접 와인을 들고 옵니다. 봄에는 레드, 가을에는 화이트와 보졸레 크뤼, 크레망을 심사합니다. 심사위원단 규모가 상당합니다. 많게는 150명에서 250명에 이릅니다. 생산자와 네고시앙(와인 유통상), 소믈리에, 양조학자, 레스토랑 경영자, 와인 저널리스트까지 업계 전문가들이 두루 참여합니다. 시음은 철저히 블라인드로 진행됩니다. 심사위원은 이 와인이 산지와 빈티지를 정직하게 대표하는지, 숙성 잠재력은 있는지를 꼼꼼히 따집니다. 경쟁률도 만만치 않습니다. 통과율은 대개 33%를 넘지 못합니다. 셋 중 하나만 살아남는 셈입니다. 지금까지 116회 넘는 시음회가 열렸고, 이 씰을 단 와인은 누적 1억병을 넘어섰습니다. 이 관문을 넘은 와인에는 ‘타스트비나쥬(Tastevinage)’ 씰이 붙습니다. 이런 와인을 ‘타스트비네(Tasteviné)’라고 부릅니다. 산지와 빈티지를 정직하게 보여준다는 기사단의 공식 보증입니다.
매년 11월 셋째 주말에는 기사단의 가장 큰 행사, ‘트루아 글로리외즈(Trois Glorieuses)’가 열립니다. 우리말로 ‘영광의 사흘’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흘 동안 부르고뉴는 문과 식탁을 활짝 열어 전 세계를 맞이합니다. 그해 빈티지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토요일에는 클로 드 부조 성에서 만찬이 열립니다. 일요일에는 오스피스 드 본(Hospices de Beaune)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와인 경매가 이어집니다. 마지막 월요일에는 뫼르소(Meursault)에서 유쾌한 파티 폴레 드 뫼르소(Paulée de Meursault)로 사흘의 축제가 마무리됩니다.
◆최초의 여성 타스트뱅 기사
이런 부르고뉴를 상징하는 타스트뱅 기사단에서 1948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 루이 흐모리께 부인 엘렌 라쿠르입니다. 흐모리께 집안은 17세기부터 뉘 생 조르주 인근에서 시토 수도회 소속 수도사들의 포도밭을 돌보던 농부였습니다. 그러다 루이와 엘렌이 1890년 뉘 생 조르주에 정착해 자신의 포도밭을 일구기 시작합니다. 남편 루이는 192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엘렌은 홀로 수십 년 동안 직접 포도밭을 관리하고 경영 전반을 책임지며 와인을 생산합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엘렌은 76세이던 1948년 여성 최초로 타스트뱅 기사로 공식 인정받게 됐습니다.
도멘은 1979년 손자 질 흐모리께(Gilles Remoriquet)가 물려받고 나서 큰 성장을 이룹니다. 프랑스 디종 대학에서 와인 공부를 한 그는 30년 넘게 사촌 파트리시아 게노(Patricia Guenot)와 빼어난 와인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피노 누아는 껍질이 얇은 품종입니다. 여기에 물리적 충격을 조금만 가해도 씨와 껍질에서 떫고 쓴 타닌이 과다하게 빠져나옵니다. 두 사람은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얻기 위해 포도에 강한 압박을 가하는 펌핑 작업이나 인위적인 과다 추출 방식을 처음부터 배제했습니다. 힘을 더할수록 와인이 좋아진다는 통념을 두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을 뺄수록 뉘 생 조르주 테루아의 섬세함이 온전히 드러난다고 봤습니다. 양조장에서 흔히 쓰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는 열전도율이 높아 바깥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여기에 기계식 펌프로 포도와 즙을 옮기다 보면 원치 않는 산소 노출이 일어나고, 포도 알맹이가 깨지면서 신선함이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질과 파트리시아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걷어냈습니다. 먼저 콘크리트 발효조를 들였습니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은 급격한 온도 변화를 막아 효모가 스트레스 없이 안정적으로 발효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동시에 미세한 기공을 통해 산소가 아주 서서히 스며들면서 타닌이 부드럽게 다듬어집니다. 포도를 옮길 때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는 자연 중력 이동 방식만을 고집했습니다. 펌프를 거치지 않으니 포도 세포와 알맹이가 터지지 않은 상태로 다음 공정에 이르고, 그 결과 와인의 신선한 향과 맑은 색상이 고스란히 지켜집니다.
또 온도를 높여 발효를 서두르면 알코올이 급격히 오르면서 맛이 거칠어지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본 발효에 들어가기 전, 포도즙을 닷새가량 차가운 상태로 두는 저온 침출 과정을 거칩니다. 이 기간에는 거친 타닌 없이 포도 껍질에서 색상과 아로마만 먼저 부드럽게 우러나옵니다. 이후 온도를 서서히 끌어올리면서 배양 효모가 아닌 포도 자체의 자연 효모로 천천히 발효를 진행합니다. 서두르지 않는 이 과정 하나하나가 와인의 복합미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셈입니다.
숙성에서도 두 사람의 절제는 이어집니다. 짙은 오크 향이 테루아 고유의 미네랄과 과실 향을 가리는 것을 둘은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새 오크통 비율을 30% 미만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15개월에서 20개월에 걸쳐 와인을 숙성시킵니다. 오크는 와인을 다듬는 도구일 뿐, 와인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두 사람의 오랜 원칙입니다. 포도에 손을 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만큼 절제된 이 양조 방식은 결국 테루아가 스스로 말하게 하려는 선택입니다. 도멘 흐모리께 와인이 힘보다 섬세함으로, 과시보다 순수함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질은 2025년 7월 71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파트리시아 게노 혼자 도멘을 이끌며 질의 방식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도멘 흐모리께는 뉘 생 조르주와 본 로마네(Vosne Romanée)에 포도밭 9.5ha를 갖고 있습니다. 화학 제초제는 쓰지 않고 말을 이용해 밭을 갈기도 합니다.
◆라 타슈 옆 오-드쉬 데 말콩소르
오-드쉬는 프랑스어로 ‘위쪽’이라는 뜻입니다. 본 로마네의 유명한 포도밭 ‘오 말콩소르(aux Malconsorts)’ 바로 위쪽 비탈에 있어 오-드쉬 데 말콩소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둘 다 프리미에 크뤼 등급 포도밭입니다. 그런데 이웃이 대단합니다.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RC)가 가진 그랑크뤼 라 타슈 포도밭이 북쪽에 딱 붙어있어 돌담 하나만 넘으면 라 타슈입니다. 라 타슈는 그랑크뤼 로마네꽁띠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만드는 곳입니다. 오-드쉬 데 말콩소르 밭 크기는 1.08ha입니다. 아주 작습니다. 도멘 흐모리께는 이 귀한 밭의 절반에 가까운 0.58ha를 소유합니다. 여기 심어진 포도나무는 나이가 50~60년이나 됐습니다.
땅속도 특별합니다. 겉흙은 붉은빛이 도는 석회질 흙입니다. 그 아래에는 단단한 분홍빛 돌이 있습니다. 흙이 얇고 척박해서, 나무뿌리가 돌 틈까지 깊이 파고들어야 삽니다. 이렇게 고생한 뿌리가 진한 맛을 만들어 냅니다. 경사도 가파릅니다. 해가 잘 드는 동쪽과 남동쪽을 보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햇빛을 듬뿍 받아 포도가 잘 익습니다. 그런데 밤에는 시원해집니다. 그래서 포도가 급하게 익지 않고, 상큼한 산도가 살아남습니다. 뜨거운 낮과 서늘한 밤, 이 차이가 이 밭 와인의 비밀입니다.
▶도멘 흐모리께 오-드쉬 데 말콩소르(Au-dessus des Malconsorts)
도멘 흐모리께 와인은 니혼슈코리아에서 수입합니다.
잔에 코를 가까이 대면 붉은 과일 향이 확 퍼집니다. 라즈베리와 딸기 향이 먼저 느껴집니다. 곧이어 블랙베리처럼 진한 과일 향도 따라옵니다. 장미와 제비꽃 같은 꽃향기도 은은하게 겹겹이 쌓입니다. 후추와 정향 같은 향신료 냄새, 그리고 돌에서 나는 듯한 특유의 미네랄 향까지 느껴집니다. 입에 넣으면 먼저 상큼한 산미가 다가옵니다. 그 뒤로 50년 넘은 나무에서 나온 진한 맛이 꽉 채워집니다. 타닌은 거칠지 않고 실크처럼 부드럽습니다.
힘은 세지만 무겁지 않습니다. 가볍게 흐르는 느낌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마지막엔 짭짤한 미네랄 맛과 붉은 과일 향이 길게 남습니다. 병 5~6년은 기다려야 제 맛이 열립니다. 잘 두면 20년 넘게도 마실 수 있습니다. 오리나 거위 요리, 버섯이 들어간 음식과 특히 잘 어울립니다. 한 해에 3000병 정도만 나옵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들도 이 와인을 높게 평가합니다. 본 로마네 특유의 화려한 향과 부드러운 타닌,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훌륭하다는 평입니다. 본 로마네의 섬세함과 단단함이 가장 잘 어우러진 와인이라는 찬사도 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