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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 때린 美 연준 의장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윤석열정부 시절인 2024년 9월30일 당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세종청사를 찾아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 장관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현직 한은 총재의 기재부 방문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그간 한은 총재들은 정부 부처를 드나드는 일을 삼갔다. 두 사람의 회동은 마침 한은의 통화 정책 결정을 열흘가량 앞둔 시점이라 금리에 관한 논의가 있었는지에 언론의 이목이 쏠렸다. 금리 인하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 부총리는 “(한은의) 고유 영역”이라며 언급을 회피했다.

 

지난 5월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백악관에서 열리는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워시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백악관에서 열리는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워시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은행법 제3조는 “한국은행의 통화 신용 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데 한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같은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당장 경제 부처 고위 관료를 지낸 인사들이 ‘낙하산’처럼 한은 총재로 보내진 사례가 많았다.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조순(2022년 별세) 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한은 총재로 임명됐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3년 취임한 김영삼(YS) 대통령은 법률에 정해진 4년 임기도 무시하고 조 총재의 사퇴를 밀어붙였다. 그가 경기 부양에 나서려는 YS정부의 경제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4년 9월 연준이 기준 금리를 0.5%P 내리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다. 예나 지금이나 금리 인하는 정부·여당에 호재다. 바이든 대통령도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내가 보기엔 경제 전반에 희소식”이라고 반겼다. 다만 ‘미 대선을 앞두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민주당 정권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구심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바이든은 “나는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며 “대통령이 된 뒤 연준 의장과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 게티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 게티이미지

파월은 2018년 4년 임기의 연준 의장에 취임한 뒤 한 차례 연임했다. 공화당의 대선 승리로 2025년 1월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를 인하하라”는 자신의 당부를 듣지 않는 파월을 눈엣가시로 여겨 그 자리에서 내몰려고 애썼다. 그러나 파월은 트럼프의 전방위 압박에도 소신을 꺾지 않은 채 임기를 끝까지 채웠다. 트럼프가 파월 후임으로 임명한 이가 케빈 워시 현 연준 의장이다. 트럼프로선 워시가 당연히 금리를 내리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연준은 지난 16일 물가 상승 우려를 들어 되레 기준 금리를 0.25%P 인상했다. 이를 두고 미 언론은 워시가 트럼프에게 ‘반기’를 든 것으로, 트럼프가 믿었던 워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이 많이 망가졌다고 하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