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장편소설 ‘재이’(문학동네)의 주인공 재이는 달동네에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주상복합아파트까지 올라간 여자다. 불화가 잦은 빈곤 가정에서 태어난 재이는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중학생 때 은사의 도움으로 한 금융그룹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명문대에 들어갔고, 졸업 뒤에는 “재단 1기 장학생, 재단을 위해 일하겠습니다!”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를 써서 그 금융그룹 본사 사회공헌팀에 입사했다. 코로나 시기 남편과 함께 투자로 재산을 크게 불렸고, 자신의 가난을 소재로 쓴 책이 성공하면서 작가 타이틀도 얻었다.
출발점과 현주소만 놓고 보면 의심할 여지 없는 계층 상승이다. 그런데 재이는 한 번도 성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명문대에 들어가서도, 대기업에 취업해서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고방식도 행동 방식도 다르다는 걸 느꼈다. 주류 사회가 ‘상식’이라 부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재이는 어딘가 어긋난 사람처럼 행동하기 일쑤다. “내 주제에 절대 닿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곳에 결국은 도착했다”면서도 그 자리를 “입석표를 쥐고 빈 좌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하고 어색”해한다. 올라갔지만 완전히 그곳의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원가족과의 관계도 문제다. 부모에게 재이는 혼자 다른 세계로 떠나버린 이기적인 딸이다. “자기만 혼자 돈 받고, 여행 다니고…… 그 가난 또 팔아서 혼자 좋은 회사 취직하고……” 하는 비난까지 듣는다. 계층 이동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인 동시에 남겨진 가족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죄책감과 소외감은 성공의 뒤편에 남는다.
재이에게는 ‘손절의 아이콘’이라는 꼬리표까지 붙는다. 재이는 대학 시절 친구와 선후배들과의 연락을 몽땅 끊었다. 걱정스레 안부를 묻는 절친한 친구의 문자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통째로 지긋지긋했”고 “다 지워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우범지대에 사는 모범생”이자 “상식과 교양이 없는 명문대생”,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장학생”이자 “스펙이 뒤떨어지는 대기업 사원”이었다고 말한다. 어느 세계의 전형도 아닌 재이는 출신을 지울 수 없고, 떠나온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소설은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비난하지도 않고, 계급 상승을 아름다운 성공 신화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의 ‘신분 상승’이라는 말 뒤에 얼마나 복잡한 삶의 층위가 숨어 있는지 들여다볼 뿐이다. 재이는 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실패담’이라고 표현한다. 선망할 만한 곳에 도착하고도 자신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삶의 역설이다.
책에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비롯해 안온의 ‘가난의 명세서’,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김나연의 ‘가난의 명세서’ 등 가난과 계층 이동을 다룬 사회과학·에세이가 폭넓게 인용됐다. 고전부터 오늘의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젊은 필자들의 책까지 아울러, 참고문헌만 따라 읽어도 알찬 공부가 될 만하다.
아쉬운 건 결말이다. 소설은 재이가 “어디가 창 안이고 밖인지도 모르겠”는 상태에서, 자신의 불안·우울·혼란을 털어놓고 “그것들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고 토로하는 데서 성급히 마무리된다. 수십 년에 걸친 재이의 경험을 따라온 독자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혼란뿐이라면 아쉽다. 재이의 혼란을 끝까지 밀어붙여 다른 사유로 뻗어 나가야 할 순간에, 소설은 더 나아가지 않는다.

